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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발라봤자 뭐해"...'마스크노믹스'에 뜨는 중고마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밀집지역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밀집지역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30대 직장인 김모(여)씨는 최근 친구 3명이 모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방에서 큰 결심을 공개했다. “성형수술 상담을 받으러 같이 성형외과에 가보자”는 것이었다. 평소 성형수술 고민해 온 김씨에게 용기를 준 건 코로나19가 가져온 두 가지 조건이었다. 첫째, 성형수술을 하려면 연차를 써야 했을 텐데 재택근무로 인해 그럴 필요가 없다. 둘째, 가끔 외출한다고 해도 마스크를 쓰면 된다. 김씨는 “지금이 성형수술 적기”라고 결론을 냈다.

“재택·마스크 가능한 지금이 성형 적기”

수술도구들. 사진 픽사베이

수술도구들. 사진 픽사베이

코로나19로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담이 줄었다는 게 환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수술이나 시술 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는 직장인 임모(여·30)씨는 “지난해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 여유자금도 있었고, 재택근무로 집에만 있다 보니 시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멍이 얼굴에 짙게 남기 때문에 평상시였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선택은 성형 애플리케이션(앱)에 있는 상담 게시판이나 성형수술 관련 인터넷 카페에도 속속 등장한다. “재택근무하는 김에 성형수술을 받았다” “나갈 일이 없으니 성형수술 하는 건 어떠냐” 등의 후기와 조언들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성형수술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9% 이상 커졌다고 한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불황에도 성장세가 꺾이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 관계자는 “외출이 줄고 마스크 사용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겸사겸사 수술을 받으려고 상담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마스크 묻기만 하는 립스틱 중고장터에

5일 '당근마켓'에 "1~2번 사용했다"는 립스틱들이 거래상품으로 올라와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5일 '당근마켓'에 "1~2번 사용했다"는 립스틱들이 거래상품으로 올라와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마스크의 일상화는 적지않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마스크에 화장이 묻어나다 보니 화장을 아예 하지 않는 ‘노 메이크업’ 트렌드, 립스틱 사용 감소 추세 등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출을 꺼리게 되면서 화장을 안 하게 되니 메이크업 시장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았다”면서도 “마스크 신경을 쓰는 여성 고객이 많아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벌였지만, 상황을 뒤엎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중에서도 마스크를 쓰면 드러나지 않는 립(입술) 메이크업 제품의 매출 침체가 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고 립스틱 매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중고거래 온라인 장터에는 립스틱을 팔겠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통해 최근 립스틱을 팔았다는 30대 주부 A씨는 “립스틱은 써봤자 마스크에 묻기만 하고, 어차피 색이 가려진다”면서 “쓸 일도 없어서 선물 받은 립스틱을 팔았다”고 말했다. 가히 ‘마스크노믹스(mask+economics)’라 부를 만 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봤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필요 없다고 느낀 화장품을 팔아버린 행동은 단기적 판단이고, 성형 수술·시술을 결심하는 건 마스크가 사라질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하는 행동”이라면서 “팬데믹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막연하고 불안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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