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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가 꿈꾸던 회사 아니다” 구글에 노조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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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에 처음으로 노조가 생겼다. ‘구글 노조’로 불리는 AWU의 홈페이지에서 노조원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AWU]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에 처음으로 노조가 생겼다. ‘구글 노조’로 불리는 AWU의 홈페이지에서 노조원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AWU]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실리콘밸리 거물 IT 기업 중 첫 노조다. 노조 이름은 ‘알파벳 직원 조합’(Alphabet Workers Union·AWU). 구글을 비롯해 모기업인 알파벳 산하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만들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첫 노조 #1년간 비밀리에 추진해 노조 결성 #26만 명 중 400명, 대표성은 약해 #네이버·넥슨 등 한국도 속속 출범

무슨 일일까?

알파벳 노조의 집행위원장(파룰 코울)과 부위원장(추이 쇼)은 이날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노조 결성 이유를 밝혔다. 일종의 알파벳 노조 선언문이다. ‘구글을 만든 건 우리다. 이건 우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들은 “노조에 회의적이거나 노조가 없으면 테크 기업이 더 혁신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에는 차별과 괴롭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WU는 지난 1년간 비밀리에 노조 결성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벳 노조, 왜 생겼을까?

전 세계 혁신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는 노조 활동이 활발하던 곳은 아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많은데다, 기업 간 인재유치 경쟁이 치열해 직원 처우·복지가 좋기 때문.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술 기업 직원들이 자사를 비판하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를 비롯 기업이 급성장했지만 내부 불만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구글 직원들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편이었다. 그것도 자주. 사내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미 국방부에 구글이 AI(인공지능) 기술을 제공한 프로젝트 등에 구글 직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지난달에도 구글 직원 3000명이 성명을 내는 일이 벌어졌다. 구글 AI 윤리팀 공동대표였던 팀닛 게브루 박사가 구글의 AI 편향성을 지적하다 해고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이 나섰다.

목소리 높이는 구글·알파벳 직원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목소리 높이는 구글·알파벳 직원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노조는 뭘 원하나?

노조를 통해 회사의 나아갈 방향에 압력을 행사하겠단 의지가 강하다.

알파벳 노조는 4일 NYT에 공개한 글에서 “우리는 세상을 발전시키는 기술을 만들고 싶었는데 회사는 우리의 우려보다 이익을 우선시해왔다”며 “알파벳이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할 때 노동자가 의미 있는 발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대표성은 아직 약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노조 가입자 수는 230명에서 400명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알파벳의 정규직, 계약직을 합치면 26만 명이 넘는 만큼 400명으론 대표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알파벳 노조는 향후 미국 통신산업노조(CWA)와 연대할 예정이다.

알파벳 노조가 다른 기업 노조처럼 사측과 단체협상을 할 가능성은 적다. 미국에서는 노조가 단체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각 주정부와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와 협의하고, 구글 직원의 투표도 거쳐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노조 퍼질까?

노조 출범 소식에 구글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는 모든 직원과 직접 소통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앞으로 구글에서 노조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의문이다.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정한 임금과 학대, 차별이 없는 직장을 원하는 알파벳 노조와 연대할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블룸버그는 “노조가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최고경영자) 등 경영진 활동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이번 노조 결성이 업계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알파벳 노조가 실리콘밸리의 ‘행동주의’(activism)를 더 가속할 지도 주목된다. 행동주의는 최근 실리콘밸리 노동자의 화두였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시도하고 있고, 크라우드펀딩 스타트업인 킥스타터도 지난해 5월 노조를 결성한 바 있다.

더 알면 좋은 내용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도 최근 3년 사이 IT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조가 급증했다. ‘노조 불모지’와도 같았던 IT 업계에서 과도한 노동, 고용 불안 등이 문제가 되면서 직원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네이버에는 창립 19년 만에 사원 노동조합 ‘공동성명’이 출범했다. 전년도 네이버가 역대 최대 실적을 냈는데도 직원에게 지급된 성과급이 예년보다 줄고, 성과급 지급 시기도 지연되면서 불만이 누적된 영향이 컸다.

네이버 노조 출범 이후 넥슨(스타팅포인트), 스마일게이트(SG길드), 카카오(크루유니언)의 노조가 속속 생겨났다. 이들 노조 대부분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산하 지회로 활동한다. 21대 국회에 최연소로 입성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민주노총 화섬노조 선전홍보부장 출신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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