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에 세상을 담다, 김창열 화백 다시 무의 세계로

중앙일보

입력 2021.01.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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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02년 작업실에서 그림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박종근 기자

2002년 작업실에서 그림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박종근 기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인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이 5일 오후 별세했다. 92세. 지난해 10월부터 11월 말까지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많은 미술인의 우려대로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됐다. 당시 전시 제목이 ‘더 패스(The Path)’.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방점을 찍은 이 전시를 끝으로 그는 물방울 하나만 보고 걸어온 긴 여정을 침묵 속에 마무리했다.

한국 추상미술 거장 92세로 별세
1972년부터 물방울만 반평생
한국·프랑스서 문화훈장 받아
평창동 자택, 구립미술관으로

김 화백은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6세에 월남했다. 이쾌대(1913~65)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고, 검정고시로 48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57년 한국의 앵포르멜(작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 미술운동을 이끌던 그는 미국에서 4년간 판화 공부를 하고 69년 파리에 정착했다.

김 화백은 70년대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화면에 물방울을 그려 왔다. 캔버스 바탕에 스며들기 직전의 물방울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물방울 그림의 시작은 가난한 유학 생활에서 우연히 얻었다. 72년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밤새워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유화 색채를 떼어내고 캔버스를 재활용하곤 하던 그는 캔버스를 다시 쓰기 위해 물을 뿌려놓았던 자리에 아침 햇살에 빛나는 물방울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영롱한 물방울로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은 김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중국국가박물관 등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16년 3월 K옥션 홍콩 경매에서 ‘물방울’(195×123cm, 73년작)은 5억1282만원에 낙찰됐다.

김 화백은 1988년 도쿄 전시 때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은 “김창열은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무상성을 상징하는 유수(流水)를 물방울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보았다. 일본 미술평론가 주니치 쇼다는 “스쳐 가는 시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방울의 온갖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다. 요컨대 그것은 시간의 회화”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김 화백은 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제주시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을 개관했다. 지난해 그의 가족은 종로구청과 함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종로구립미술관으로 조성키로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 발인은 7일 오전 11시50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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