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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으면 유전자 변형" 음모론에 500회 분 훼손한 美약사

중앙일보

입력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한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각종 백신 괴담이 떠돌고 있다. 급기야 미국에서는 음모론에 빠진 한 약사가 접종을 막겠다며 고의로 백신을 못 쓰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오로라 의료센터에서 한 약사가 백신을 무단으로 상온에 노출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약사 스티븐 브란덴버그(46)는 백신이 사람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주장을 믿고 있었으며 접종을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브란덴버그는 지난달 24일과 25일 밤 두 차례에 걸쳐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57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밤새 밖에 놔뒀다.

미국 위스콘신주 그래프턴 경찰은 모더나 백신 57병을 고의로 오염시킨 혐의로 스티븐 브랜던버그(사진)를 체포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위스콘신주 그래프턴 경찰은 모더나 백신 57병을 고의로 오염시킨 혐의로 스티븐 브랜던버그(사진)를 체포했다. [AP=연합뉴스]

모더나 백신은 냉장고에서 꺼낸 뒤 12시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24일 밤 상온에 노출된 뒤 냉장고에 넣어졌다가 25일 밤 다시 밖으로 꺼내진 해당 백신은 전량 폐기됐다. 폐기된 백신은 570회 분량으로, 8000달러(871만 원)~1만2000달러(1306만 원)어치에 달한다.

그는 26일 병원 측에 “냉장고 안쪽에서 물건을 꺼내기 위해 백신을 뺐다가 다시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이어지자 상온 노출된 백신은 효과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오염시켰다고 진술했다. 또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연휴, 접종이 일시 중단된 때를 노렸다고 실토했다.

모더나 백신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상온에 노출하면 12시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 [AFP=연합뉴스]

모더나 백신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상온에 노출하면 12시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 [AFP=연합뉴스]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음모론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진술서에서 “브란덴버그는 정부가 사이버 공격을 계획하며 전력 공급을 중단할 것이며, 세상이 멸망한다고 믿었다”면서 “최근에는 아이들을 위해 30일 치 식량을 한꺼번에 사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체포영장에서 브란덴버그를 음모론자로 표기했다. 다만 검사는 상온 노출된 백신이 효과가 떨어지는지를 모더나가 검증해야 한 뒤 정식 기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백신을 둘러싼 가짜뉴스로 골머리를 앓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유독 접종 속도가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도 가짜뉴스가 일으킨 '백신 불신'이란 지적이다.

4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벨뷰게론톨로지 센터에서 한 간호사가 화이자-바이오테크 코라나19 백신을 주사기에 채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벨뷰게론톨로지 센터에서 한 간호사가 화이자-바이오테크 코라나19 백신을 주사기에 채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24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부터 소셜미디어(SNS)에는 이미 가짜뉴스가 떠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소문은 미국에서 백신을 맞은 간호사가 사망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달 17일 미 테네시주에서 간호사 한 명이 접종 후 실신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퍼진 가짜뉴스였다.  이 밖에도 “화이자 백신 첫 접종자는 배우”, “백신을 맞고 안면 마비가 왔다”, “백신이 불임을 유발한다”는 등의 거짓 정보들이 떠돌았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백신을 거부하는 프랑스인은 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9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백신을 맞겠다”는 프랑스인 40%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10월 조사(54%)와 비교하면 14%포인트 떨어졌다.

백신 불신은 낮은 접종률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지난달 27일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닷새째인 지난 1일까지 백신을 맞은 사람 수가 516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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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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