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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의 국제정치학…국내외 질서를 뒤흔들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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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이 지난해 12월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접종되면서 각국 내부 정치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부 정치에선 백신이 정부 능력에 대한 국민 신뢰의 바로미터이자 정치 지도자의 권위를 받쳐주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 국제정치에선 백신을 우선 확보한 국가·지역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 ‘백신 분열’과 ‘백신 격차’가 선명해지고 있다.

백신, 정치지도자 위상 좌우
영 존슨 총리, 지지율 신장
이스라엘은 3월에 다시 총선
푸틴, 임시허가 뒤 지지 회복
시주석,“중화민족 부흥”강조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모습. 영국에서 접종이 시작된 지난 4일 스코틀랜드 던디의 록히 진료소에서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4일 화아자 ·바이오엔테크 백신에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을 했으며 지난 4일 접종에 들어갔다. 한국에선 4일 한국 아스트라제네카가 품목허가 신청을 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사에 착수했다. AFP=연합뉴스·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모습. 영국에서 접종이 시작된 지난 4일 스코틀랜드 던디의 록히 진료소에서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4일 화아자 ·바이오엔테크 백신에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을 했으며 지난 4일 접종에 들어갔다. 한국에선 4일 한국 아스트라제네카가 품목허가 신청을 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사에 착수했다. AFP=연합뉴스·

백신이 내부 정치에서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은 사례는 미국과 영국·이스라엘, 그리고 중국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달 20일 조사업체 유고브가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 잘한다 56%, 못한다 35%를 기록했다. 지난달 8일 영국이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의 일반 접종을 시작한 직후다. 존슨 총리의 지지도는 지난해 바닥이던 4월 13일 조사에서 잘한다 26%, 못한다 66%였던 것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4월 이후 줄곧 상승했지만 백신 조기접종이 박차를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존슨의 업적인 브렉시트 협상 완료가 조사 뒤인 12월 24일 이뤄졌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뉴시스]

게다가 존슨 내각의 코로나 방역은 국내외에서 줄곧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영국은 1월 4일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 271만 명에 사망자가 7만5000명을 넘는다. 확진자가 세계 5위, 사망자는 6위에 이른다. 11월 이후엔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다. 유고브 조사가 끝난 시점이지만 12월 29일부터 나흘 연속 일일 확진자가 5만 명 이상 나오고 있다.
존슨 총리가 소속한 보수당은 백신 접종과 브렉시트 협상 완료,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요인이 모두 반영된 12월 26~30일 델타폴·데일리미러 조사에선 지지율 43%로 38%인 노동당을 5%P 앞섰다. 지난해 내내 영국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선 1~5% 차이로 양당이 엎치락뒤치락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 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난달 19일 텔아비브 인근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화이자 ·바이오엔테크 백신을 맞고 있다.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는 백신 접종 과정을 생중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 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난달 19일 텔아비브 인근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화이자 ·바이오엔테크 백신을 맞고 있다.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는 백신 접종 과정을 생중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보다 이른 지난달 19일 중동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조기 백신 확보와 효율적이고 잘 준비된 보건의료 시스템을 바탕으로 백신을 초고속으로 접종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타에 따르면 3일 현재 이스라엘의 백신 접종률은 14.14%로 바레인(3.62%)·영국(1.39%)·미국(1.38%)·덴마크(0.81%)·러시아(0.55%)·독일(0.32%)·캐나다(0.31%)·중국(0.31%)을 훌쩍 뛰어넘는다. 불과 보름 남짓한 기간에 930만 이스라엘 인구 중 130만 명 이상이 접종했다.

지난 2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백신을 맞는 모습. 지난달 27일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프랑스는 엿새 동안 저봉자가 500명에 지나지 않는 느린 속도 때문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행정부가 비판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백신을 맞는 모습. 지난달 27일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프랑스는 엿새 동안 저봉자가 500명에 지나지 않는 느린 속도 때문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행정부가 비판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백신 접종 선도국가로, 네타냐후 총리는 백신 속도전을 이끈 유능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네타냐후가 글로벌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1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800만 회분을, 12월에는 모더나 백신 600만 회분을 각각 계약했다.
이스라엘 의회는 지난달 22일 자정까지 2021년 예산안 통과에 실패하면서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월 23일 다시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2년새 네 번째 총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조사기관 패널폴리틱스와 일간지 마리브가 실시한 조사에서 네타냐후가 소속한 리쿠드당은 차기 총선에서 29석을 차지해 제1당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 의석인 36석보다는 적지만 네타냐후가 비리수사와 코로나 방역 등의 문제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결과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매체들이 평가했다. 네타냐후의 정적인 베니 간츠 국방부 장관이 이끄는 청백연합은 현재 15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선 2.6%의 지지율로 한 석의 의석도 건지지 못하고 사라질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정당 투표제를 실시해 총선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며, 3%를 얻지 못한 정당은 한 석도 배분받지 못한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해 보급 중인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해 보급 중인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네타냐후가 4번째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은 백신 접종으로 얻은 정치적 자신감이 바탕이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국제적인 위상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수단·모로코 등 아랍연맹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올해는 오만·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범위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신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유대인 인적 네트워크도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분석된다. 화이자의 최고경영자인 앨버트 불라는 그리스에서 미국에 이민 간 유대인이며, 모더나의 수석의학책임자(CMO)인 탈 작스는 이스라엘인으로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에서 학위를 마쳤다.

기자회견 생방송에 출연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분류되지만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정책을 직접 기자들과 국민에게 설명하고 있다. 리아노보스티=연합뉴스

기자회견 생방송에 출연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분류되지만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정책을 직접 기자들과 국민에게 설명하고 있다. 리아노보스티=연합뉴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백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현지 컨설팅업체 레바다가 조사한 푸틴의 업무수행 지지도는 코로나가 잠잠하던 지난해 2월까지 69%에 이르렀다. 하지만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4·5월에는 59%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백신이 특수 대상자에게 접종된 8월 반등하기 시작해 9월에 69% 선을 회복했다.

5일 인도네시아 서부 반다르아체의 의료기관에서 직원들이 중국산 시노백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5일 인도네시아 서부 반다르아체의 의료기관에서 직원들이 중국산 시노백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백신이 러시아 정치에 영향을 준 경우지만, 백신 허가 과정을 보면 정치가 과학을 이용한 측면도 보인다. 러시아는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 연구소가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백신과 같은 방식인 전달체 (벡터) 백신인 스푸트니크 V를 개발해 일반에 접종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 당국이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한 과학적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8월에 시판 허가를 내줬다는 사실이다. 백신은 통상 1,2,3상 임상시험을 차례로 마치고 그 결과를 발표한 뒤 검토를 거쳐 승인이나 임시사용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스푸트니크 백신은 2상 임상시험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 8월 11일 러시아 보건부의 임시사용 승인을 받았다. 임상시험 2상 결과는 9월 4일, 3상은 12월에 각각 발표됐으니 허가부터 내주고 유효성과 안정성 검증을 뒤늦게 진행한 셈이다. 이런 비과학적인 절차의 배후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푸틴은 백신 개발로 회복된 지지도와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장기집권이 가능해진 것을 바탕으로 2021년 권위주의 통치체계를 강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VOA는 푸틴이 올해 비판자들을 해산하고 무력화해 자신의 권위주의 통치기반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9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코로나19 퇴치 표창 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가 장보리(張伯禮·72·왼쪽) 중국 공정원 원사에게 수여할 ‘인민영웅’ 메달을 확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코로나19 퇴치 표창 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가 장보리(張伯禮·72·왼쪽) 중국 공정원 원사에게 수여할 ‘인민영웅’ 메달을 확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올해 신년사에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필코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생국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전국 대부분을 봉쇄하는 강력한 방역으로 확진자 8만7000여 명과 사망자 4600여 명 선에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여기에 더해 자국 제약사인 시노팜·시노백·칸시노 등이 백신을 개발해왔다. 시노팜 백신은 지난달 31일 중국 당국의 임시사용 승인을 받았다. 중국에선 당국의 승인 이전에 이미 450만 명이 백신을 맞았다고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밝혔다.
시노팜·시노백 백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처리한 불활성화 백신이며, 칸시노 제품만 아스트라제네카나 스푸트니크 V와 같은 방식의 전달체 백신이다. 시노팜 백신은 수출 계약을 한 파키스탄은 물론 중동의 바레인 등에서 임시사용 허가를 받았다. 중국은 아프리카·중남미·중동 등에 자국 백신을 염가에 다량 공급하면서 코로나 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코로나19 시련을 극복한 시 주석의 정치적 위상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대선일인 11월 3일을 넘어 12월 들어서야 접종이 시작되면서 그 덕을 보지 못하고 재선에 실패했다. 백신을 정치와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다 오히려 실패한 경우다. 이런 트럼프를 제외한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에게 백신은 ‘절대 반지’의 위력으로 다가서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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