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한 기관장 공석사태 3년째…"과기계 방치, 더는 안돼"

중앙일보

입력 2021.01.05 05:00

업데이트 2021.01.05 09:26

광주광역시 남구 김치로에 자리잡은 과학기술 정부 출연연 세계김치연구소.

광주광역시 남구 김치로에 자리잡은 과학기술 정부 출연연 세계김치연구소.

 법이 정한 정부 출연연구소의 기관장이 햇수로 3년째 공석 중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출연 연구기관 중 하나인 세계김치연구소가 바로 그곳이다. 2019년 10월 당시 하재호 소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한 이후 15개월째 소장실이 비어있다. 그 새 해가 두 번 바뀌었다. 지금 연구소를 이끄는 사람은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은 최학종(50) 책임연구원이다.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
2019년 10월 소장 퇴임 후 15개월째 공석
기관평가 미흡 받은 후 기관 통폐합 작업
과기부 집권당 무관심 속에 사실상 방치

세계김치연구소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1월 ‘김치 관련 분야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해 국가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국내 김치산업을 식품산업의 대표적인 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ㆍ발전시키는 데 기여를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ㆍ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과 김치산업진흥법에 따라 한국식품연구원의 한 부서로 있던 김치 연구 파트가 부설기관으로 독립해 빠져나왔다.

당시 김치를 연구하는 출연연이 생긴다는 소식에 각 지자체가 유치에 나섰다. 전북 완주, 충북 괴산, 경남 거창, 광주광역시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광주 5미’(五味:떡갈비ㆍ한정식ㆍ김치ㆍ오리탕ㆍ무등산보리밥)와 함께 김치 전통발효식품단지 조성을 진행 중이던 광주로 돌아갔다. 광주광역시는 2010년 시의 남쪽 임암동 화방산 자락 6만2000여㎡(약 1만9000평) 부지에 먼저 김치타운ㆍ김치박물관을 세우고, 2년 뒤 세계김치연구소까지 유치했다.

세계김치연구소 노조원들이 세종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앞에서 통폐합 작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준호 기자

세계김치연구소 노조원들이 세종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앞에서 통폐합 작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준호 기자

이렇게 시작한 김치연구소가 ‘방치’된 표면적 이유는 ‘성적’이 나빠서다.  설립 이후 첫 기관평가인 2013년 ‘미흡’을 받은 데 이어, 2016년에도 ‘미흡’을 받았다.  2019년엔 ‘보통’으로 평가가 상승했지만, 이미 여론의 미운털이 깊이 박힌 탓일까. 2019년 8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보고서를 통해 본원인 한국식품연구원과 통합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주관하는 통폐합 추진 테스크포스(TF)까지 구성됐다.

역설적이지만, 김치연구소 방치는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탓에 TF 회의가 온라인으로 열리면서 1년 가까이 시간을 끌었다.  어렵사리 ‘통폐합’ 쪽으로 의견이 모였지만, 이번엔 출연연을 주관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원광연 이사장의 임기(2017.10~2020.10)가 만료됐다.  방치의 이유가 ‘코로나 19’에서 ‘이사장 공석’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관 통폐합 문제가 결론 나지 않다 보니 기관장 선임은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기관장이 없으니 연구소는 새로운 사업은 물론, 직원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김치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은 인사권 등 권한 없이 연구소를 이끌어야 하고, 노조는 노조대로 통폐합 문제로 어수선한 상태”라며 “기존에 정해진 것 외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무한정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에 대해 원광연 전 이사장은 중앙일보에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이 15개월째 공석인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임기 만료 전에 결정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까지 늦어진 일차적인 책임은 이사장인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세계김치연구소(왼쪽)는 김치타운ㆍ김치박물관과 함께 광주광역시의 김치 전통발효 식품단지를 구성하고 있다.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세계김치연구소(왼쪽)는 김치타운ㆍ김치박물관과 함께 광주광역시의 김치 전통발효 식품단지를 구성하고 있다.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일차적 책임’이라는 복선이 깔린 원 전 이사장의 말은 무슨 뜻일까. 과기계에서는 김치연구소 소장 공석 사태의 뿌리에는 과기계에 대한 현 정부와 여당의 무관심과 지역 정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기정통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사장 공석으로 회의를 제대로 열 수 없어서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이유를 들지만,  기관 운명을 결정짓는 문제를 3년째 방치하고 있는 건 과기계에 대한 현 정부의 관심 부족이라는 게 과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광주’라는 지역적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비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애초 김치연구소를 만들었지만, 현 정부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광주)에 들어서 있는 점 때문에 연구소를 ‘없애고 싶어도 못 없애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2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용섭(더불어민주당) 시장이 이끄는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9월 과기정통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 관련 기관에 세계김치연구소가 독립연구기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공문으로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과기계의 한 인사는 “김치연구소 뿐 아니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자리도 3배수까지 후보를 압축하고도 수개월째 공석 중에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현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는 너무 무관심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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