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임팩트]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불황” ‘빚 갚느니 문 닫는다 파산’ 최다

[코로나 임팩트]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불황” ‘빚 갚느니 문 닫는다 파산’ 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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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하루 4~5시간 일하면 나머지 시간엔 기계를 세워야 합니다. 일감이 없으니까요.”

김남수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업계 전체가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명함·청첩장·포스터 등 인쇄 수요가 급감해서다. 그는 “전체 인쇄소의 60.3%에서 지난해보다 가동율이 30% 이상 떨어졌다”며 “디지털 전환 열풍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까지 겹쳐 대부분 숨만 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계층 간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국내도 비슷하다. 기술 기업과 전통기업, 온라인 플랫폼 개발자와 플랫폼 노동자가 느끼는 ‘코로나19 불황 온도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빅테크 모바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빅테크 모바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수퍼 빅테크의 등장

지난해 국내외 증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빅테크’였다. 중앙일보가 삼성증권에 의뢰해 2019년 말과 지난해 말(12월 24일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나스닥·다우·S&P500 포함 기업 대상)을 조사한 결과 1~5위인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구글)·페이스북의 시총은 4조9321억 달러에서 7조4560억 달러로 51% 늘었다. 5개 회사의 상위 30위권 내 비중도 전년 대비 7.9%포인트 늘어 49.1%가 됐다.

국내에서도 기술 기업은 약진했다. 네이버·카카오·엔씨소프트 시총은 2019년 55조원에서 지난해 말 102조원으로 거의 2배가 됐다. 김용구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비대면 광풍을 타고 전 세계 IT 플랫폼 기업에 자금이 몰렸을 뿐 아니라, 기업 실적도 역대 최고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변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변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빚 갚느니 문 닫는다”

반면 비대면·디지털 파도에 올라타지 못한 기업은 위기다. 2011년 창업한 K사는 지난달 15일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10년간 브랜드 컨설팅·교양강좌·음식점 등 다양한 사업을 했지만 최근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대출 불가' 통보를 받자 문을 닫기로 했다. 자산은 10억이 안 되는데 빚은 32억에 달한다. K사는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감소한 점을 파산 신청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11월까지 전국 법원에 파산 신청한 기업은 984개다. 2019년 기록(931건)을 훌쩍 넘었고, 역대 최대 규모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법인 파산신청 건수가 회생신청(809건)을 넘어섰다. 2007년 이후 첫 역전이다. 빚 일부를 탕감받고 회사를 살리겠다는 선택보다 회사를 포기하겠단 사업자가 더 많았다는 의미다. 법무법인 세종 최복기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것이란 확신이 없어, 사업 자체를 접는 기업이 많다”며 “파산 신청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파산ㆍ회생 신청 기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파산ㆍ회생 신청 기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격근무 가능한 자와 아닌 자

코로나19가 키운 플랫폼은 일자리 양극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차이를 가르는 핵심은 ‘원격근무’. 컴퓨터로 가상 플랫폼(모바일 앱)을 만드는 사람과 플랫폼에서 일감을 구하는 사람 간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IT 대기업에 다니는 김 모(31) 씨는 지난달에 회사를 간 적이 없다. 원격근무인데다 연말에 열흘간 휴가를 썼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못 쓴 연차를 연말에 몰아 썼다”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19 시대 필수노동자인 택배기사 이 모(48) 씨의 연말은 분주했다. 지난달 집에서 쉰 날은 일요일과 크리스마스를 합친 5일이다. 물량이 늘어 퇴근도 예년보다 1시간가량 늦어졌다. 이 씨는 “12월은 평균 월 9000~1만개가 기본인데 지난 12월에는 1만2000~1만 4000개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비대면 상거래가 늘면서 오토바이를 통한 배달업이 대폭 늘었다. 8일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주변에 수 백대의 오토바이가 주문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다. 김상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비대면 상거래가 늘면서 오토바이를 통한 배달업이 대폭 늘었다. 8일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주변에 수 백대의 오토바이가 주문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다. 김상선 기자

국내에선 정리해고와 파산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상당수가 음식배달·택배 등 플랫폼 노동으로 흡수됐다. 배달대행업체 바로고에 따르면, 지난해 1월 9300명이던 월 1회 이상 일한 배달원 수는 지난 11월 2만6200명으로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추산한 국내 플랫폼 종사자는 약 22만명. 이들 중 절반이 배달기사다. 하지만 플랫폼 종사자들은 프리랜서 취급을 받는다. 노동자로서 보호받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지난달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빈 틈이 크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배달노동자의 과로와 감염 위험 문제가 크다”며 “원격근무가 가능한 정규직·전문직과의 차이가 확연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태 파악·영세 소상공인 지원 필요

주요 IT상장기업 시가총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요 IT상장기업 시가총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확인된 기업 간, 종사자 간 불평등 문제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에는 코로나19가 기회였지만, 여행 플랫폼은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분야별 편차가 큰 게 코로나19 불평등의 특징”이라며 “코로나19 불평등이 어느 영역에서 얼마나 심화했는지 진단부터 정확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기업 간 격차에 대해 “정부의 디지털 뉴딜이 고사 위기에 처한 전통 기업보다 잘 나가는 기업·기술에 더 지원주겠다는 방식이어서 아쉽다”며 “영세 소상공인처럼 비빌 언덕이 없는 이들의 디지털 생태계 적응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김정민 기자 letmein@joongang.co.kr

“글로벌 연대로 빅테크 파워 견제해야” 미래학자의 우려

코로나19는 사회 곳곳에 깊은 불평등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특히 교육과 일자리가 그렇다.

토마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불평등의 해법으로 ‘기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빅테크 기업을 견제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IBM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1997년 미래학 싱크탱크 다빈치연구소를 설립해 글로벌 기업에 전략 컨설팅과 미래 예측 워크샵을 제공한다. 지난달 24일 e메일로 프레이 소장을 만났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사진 다빈치연구소]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사진 다빈치연구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원격근무가 글로벌 채용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의사소통과 성과, 능력이 우선 채용 기준이 됐다. 문화적·인종적 차이 등은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번아웃’(Burnout, 신체적·정신적 탈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기업들은 원격근무의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지만, 정작 신경써야 할 문제는 ‘너무 많이 일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학습격차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학습 플랫폼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고도로 개인화된 맞춤형 AI가 개개인의 학습 격차와 결함을 채울 수 있다. 오늘날의 교육 과정도 미래엔 대폭 단축될 것이다.
플랫폼을 만드는 계층과 플랫폼에서 일하는 계층 간 소득 불평등도 커졌다.
단기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가 문제가 되겠지만, 세계 임금은 서서히 평준화할 것이다. 매주 신기술이 나올 만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위스 기술자가 러시아 기술자보다 4배 높은 임금을 받지만, 이 격차도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 발전이 빨라지면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 아닌가.
자동화 로봇들은 개인의 업무 방식을 바꿀 것이다. 코딩 없이도 주요 업무의 자동화를 돕는 노(No) 코딩 도구 시장이 커질 것이다. 동시에 자동화로 남아돌게 될 시간과 돈은 완전히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당신은 기술을 해법으로 강조하지만, 빅테크 독과점이 문제다.
인터넷을 기업이 운영하도록 맡겨두는 게 안전한지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인터넷 콘텐트를 관리할 글로벌 규제 기관이 없다. 유엔(UN)이나 세계보건기구(WHO)처럼 갈등을 해결하고 정책적 합의를 추진할 권위 있는 국제 기구가 시급하다. 특히 AI, 프라이버시, 가상화폐, 지적 재산, 가짜 뉴스 등 최근 떠오른 분야는 (국제적인) 허용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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