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유권자는 ‘좋은 정치’만 골라서 ‘구독’하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5 00:38

업데이트 2021.01.0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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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인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의 앞글자를 따서 ‘MAGA’라고 부른다. 지난해 7월 MAGA 기업들의 시총은 모두 1조 달러를 넘었다. 특히 애플은 지구촌 기업 최초로 시총 2조 달러(약 2300조원) 기록을 세웠다.

모든 제품·서비스 구독 가능해져
유권자의 선택·해지 가능케 해야

애플의 시총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환산하면 미국·중국·일본 등에 이어 세계 7위 국가에 버금가는 경제 규모다. MAGA를 비롯해 테슬라 등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은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비즈니스 모델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위성을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을 정도다.

바야흐로 글로벌 경제 트렌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구독하는 구독경제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예전에 구독(購讀)이라는 단어는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을 정기적으로 사서 읽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 구독경제는 일정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정기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경제 활동을 통칭한다.

구독경제에서는 신뢰자본 축적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해야 한다. 즉, 구독경제는 소비자가 선불로 결제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에는 대박 상품을 기획하고, 그 제품을 대형마트 등 유통망을 통해 많이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누가 그 물건을 사 갔는지 공급자가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구독경제 시대에는 기존처럼 한 번의 판매로 매출이나 재고 소진이 되지 않는다.

구독경제에서는 구독자(소비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독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구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함은 물론이고, 숨겨진 작은 불편까지 찾아내고 반영해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해서 개선해야 기업이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

선거는 상대방이 못하면 내가 잘하는 것이 없어도 선출되는 상대 평가다. 반면 정치는 상대방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나의 정책과 그에 대한 결과로만 평가받는 절대 평가다.

만약 정치에도 구독경제 모델이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인은 투표라는 선불을 받은 만큼 정당이나 정치인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정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는 어떠한가. 국민을 위한 정책과 책임은 온데간데없다. 편 가르기, 요란한 구호, 상대방의 약점과 인신공격에만 혈안이 돼 있다. 국민은 정치에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선불 결제를 했지만, 어디에도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뽑히기만 하면 엉망진창인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국민은 무조건 4년이라는 구독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이제 정치도 구독자인 국민의 어려움이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의견을 신속하게 반영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라는 선불을 받고도 양질의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정치인을 국민이 즉시 구독 해지할 수 있어야 한다. ‘ID 경제’ 기반의 구독 정치서비스 플랫폼 구축을 제도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인공위성도 구독하는 시대다. 구독자인 국민은 정책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정치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는 정치를 골라서 구독하고 싶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의 해가 밝았다. 수많은 후보들 중에 과연 유권자는 누구를 선불로 구독할까.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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