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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 본격화할 고령자 의료비 충격이 더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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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또 하나의 위기’ 국가 의료비 문제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았던 한 해가 가고 변함없이 새해가 밝았다. 건강의 소중함이 큰 시기이기 때문에 신축년에는 여느 해보다도 가족과 지인의 건강을 기원할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삶은 기원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을 고민하고,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고, 새해가 되면 금주나 금연을 선언하기도 한다. 경제학적으로 일반화하자면, 건강은 식단·운동·음주·흡연 등 건강 관련 재화와 의료서비스 소비를 통해 생산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소비 지출 선택이 현재와 미래의 건강을 결정한다.

한 해 국가 의료비 154조원에 달해 #고령화·만성질환으로 의료비 급증 #건강수명 짧아져 의료비는 더 늘어 #코로나 통해 의료체계 교훈 얻어야

하지만 개인 노력만으로 건강을 성취할 수는 없다. 의료비 지불이 힘든 취약계층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기 어렵고, 가족 중 재난적 의료비를 초래하는 중증환자가 있다면 가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코로나 같은 감염병의 예방·관리와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는 개인 능력 밖의 일이다. 이 같은 문제들은 불평등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시장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국가는 의료비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질병의 예방과 퇴치를 위한 공공지출을 하게 된다.

결국 건강한 사회는 개인의 올바른 소비 선택과 정부의 바람직한 건강정책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과 국가는 건강을 위해 얼마나 지출하고 있나? 각국은 국민보건계정을 만들어 건강지출을 관리하는데,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구매 지출을 포함하는 ‘경상의료비’가 대표적인 지표이다.

2019년 우리나라의 경상의료비 총액은 154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8% 수준이다. 국민 1인당 연간 경상의료비는 297만 원으로 추계된다. 이 중 각종 공보험과 공공의료 확충 등 정부가 지출하는 비중은 60.8%이고, 나머지는 민간의 지출이다. 적어도 의료비 관리에 있어서는 정부의 역할이 더욱 크다. 특히 경상의료비의 공공지출 재원은 국민의 보험료와 세금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는 의료비의 효율적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

10년 후 프랑스·일본 수준 도달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8.8%에 다소 못 미친다. 미국 17%, 프랑스 11.2%, 일본 11.1% 등 11개국이 10% 이상을 유지한다. 주목할 사실은 한국의 의료비 증가 속도는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눈에 띄게 빠르다. 최근 10년간 1인당 경상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이 6.2%였는데, 같은 기간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율 2.9%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이 추이가 지속되면 10년 후쯤 프랑스·일본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국의 인구변화와 국민건강 추이를 살펴볼 때, 의료비는 지난 10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질환 유병률은 연령에 따라 증가하므로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 의료비 증가를 피할 수 없다. 지난 10년간 인구 고령화는 의료비 증가의 30% 정도를 설명한다고 한다. 둘째, 만성질환 유병률 증가도 의료비 상승의 주요한 요인이다. 특히 비만·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생활방식과 관련된 만성질환 유병률이 빠르게 늘고 있다. 더구나 건강보험의 의료보장성이 강화되고 의료 기술이 진일보하는 것도 의료비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인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추이

한국인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추이

이 중에서 만성질환 유병률 증가는 의료비 관리의 효율성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다. 경상의료비는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건강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흔히 질환으로 살아가는 기간을 제외한 수명을 건강수명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12년 65.7세에서 2018년 64.4세로 낮아지고 있다. 의료비 지출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은 줄고 있다.

질병 부담이 높은 당뇨병을 예로 들자면,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는 500만 명 정도이지만 당뇨 고위험군은 1000만 명에 달한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운동 부족, 불균형한 식습관 등 악화된 생활방식이 가져온 결과이다. 이런 추세라면 당뇨병 치료를 위한 의료비는 급증할 것이다. 당뇨 위험군이 당뇨병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사전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보장성 강화로 의료 가격이 낮아질 때 의료 이용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총 의료비가 증가해서 보험료 인상으로 되돌아온다면 보험의 순기능을 저해하게 된다. 실손보험의 높은 보장으로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증가하고 민간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지자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을 추진 중인 것은 교훈적인 사례이다.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해야 만성질환 대처

한국은 전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모범 국가로 인식됐다. 그동안 꾸준한 보장성 확대를 통해 국민건강 증진을 도모하고 보험료와 의료수가를 잘 관리하면서 의료비 지출의 효율성을 높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 유병률, 도덕적 해이 등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급변하면서, 효율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런 우려는 향후 10년 내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될 수 있다는 국회예산정책처 등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의 예상에서도 나타난다. 혹여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되면 보장성을 다시 낮추거나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건강정책과 건강보험 재정관리에도 효율성이 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 행태 분석에 근거해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고, 사전적인 건강관리와 예방을 통해 만성질환 유병률을 낮추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의료산업 활성화를 통해 공급 확대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 이런 대책의 필요성은 국회나 정부도 쉽게 동감하겠지만, 적극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치료를 위한 지출에 비해 사전관리의 건강증진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경험한 후에야 감염병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부 투자를 늘리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의료비 관리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말아야 한다.

인간 생명가치 높여야 감염병 예방력 높인다

삶의 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건강, 복지, 환경개선을 위한 재정지출 수요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이와 관련한 재정사업 비중이 크게 늘었다. 따라서 한정된 재정의 효율적 활용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이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비용-편익 분석이다.

비용-편익 분석은 재정사업의 소요 비용 대비 편익의 경제적 가치 비교를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재정사업의 비용은 제공되는 서비스의 직접비나 건축비 등이므로 비용 추계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하지만 건강, 복지, 환경개선 사업 편익은 비정형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에 이를 정량화하거나 경제적 가치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거나 건강증진 목적의 재정사업 가치 추정은 난이도가 더욱 높다.

경제학자들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결정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간 생명가치를 추정하는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인간 생명가치를 추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위험회피 접근법’이다. 0.001%의 확률로 사망 위험이 있는 일을 할 때 10만원의 위험 프리미엄을 지불한다면, 1의 확률로 생존하는 생명의 경제적 가치는 100억 원으로 추정하는 방식이다. 기대되는 여명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의 현재가치를 생명가치로 간주하는 ‘인적자본 접근법’도 있다.

국내에서 재정사업 평가에서 적용하는 인간 생명가치는 5억 원 전후이다. 미국 복지부가 활용하는 값은 100억 원이 넘는다. 인간 생명가치를 화폐 가치로 추정하다 보니 각국의 경제 수준과 생명에 대한 존중 태도에 따라 그 값은 천차만별이다.

인간 생명가치는 재정사업뿐만 아니라 보건, 환경, 안전 규제의 결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명가치가 높을수록 비용 대비 편익이 커지기 때문에 재정사업 타당성 조사의 통과 확률은 높아지고 규제 강도는 강해진다. 생명가치가 클수록 정부는 감염병 예방과 환경 개선에 훨씬 적극적으로 투자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건강과 생명은 더욱 소중해졌다. 앞으로 한국인의 생명가치도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