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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이제껏 뭐했나" 내일 변호사시험 수험생 감염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험 보다가 확진되면 법무부가 보상해줄 건가요”

5일 실시되는 제10회 변호사 시험을 앞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 최상원(39)씨가 한숨을 쉬며 한 말이다. 변호사시험은 5년간 다섯 차례 응시 가능한데 최씨에겐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 최씨는 “닷새 동안 시험을 보다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변호사시험 주관부처인 법무부의 방역대책이라고는 시험 한 시간 전 고사장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겠다는 것뿐”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5~9일 닷새간 시험…"수능 땐 있던 가림막도 설치 안 해" #헌재는 법무부의 '확진자·고위험자 응시 제한' 효력 정지 #"확진자 나온 연세대·중앙대 역학조사 해달라" 행정심판

그는 “나는 확진자만 6명이 나온 중앙대학교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3~4년간 회사에 다니다 공익 변호사의 꿈을 꾸고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비워야 하나 싶다”라고도 했다.

변호사시험 .연합뉴스

변호사시험 .연합뉴스

서울 동부구치소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도마 위에 오른 법무부가 이번엔 예비 법조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급증한 가운데 뚜렷한 감염 예방 대책 없이 5일 변호사 시험을 강행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재 로스쿨 3학년 박모(30)씨는 “지난 1년 시험을 준비하며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려 외출을 삼가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시험을 보는 도중 걸리진 않을까 생각하니 막막하다”며 “수능 시험장에도 있던 책상별 가림막조차 없다고 하는데 허탈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직장암·뇌경색 기저질환에 꿈 접은 ‘5시생’

2018년 직장암을 진단받았지만 꿈을 위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온 로스쿨 졸업생 박모(53)씨의 서재. [박씨 제공]

2018년 직장암을 진단받았지만 꿈을 위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온 로스쿨 졸업생 박모(53)씨의 서재. [박씨 제공]

변호사의 꿈을 접은 수험생도 있다. 늦깎이 변호사 준비생 김모(53)씨는 “3년 전 직장암 선고를 받고 작년엔 뇌경색 진단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면서도 “올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모호한 표현으로 구제책을 마련하겠다는 법무부를 보며 희망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싸울 시간에 지난해 여름부터 방역대책을 제대로 세웠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해외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변호사를 꿈꿨지만 어제 오후 식구들에게 이 시험은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전하고 응시를 취소했다”고 했다.

헌재 전날 밤 "확진자도 시험 보게 하라" 결정 

법무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확진자 응시 불가’ 방침을 내세우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변호사시험법 7조에 따르면 수험생은 로스쿨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이내에 5회까지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응시 기간 만료가 임박한 수험생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시험 기회를 잃게 됐다. 시험 도중 확진을 받거나 시험장에서 고열 등 고위험자로 분류되더라도 남은 시험은 볼 수 없게 했다. 이 같은 법무부 시험 공고 내용을 두고 일부 로스쿨 응시생들은 지난달 29일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헌재는 시험 전날 4일 오후 8시 시험 공고 유의사항 중 ‘확진자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습니다’, ‘고위험자의 의료기관 이송’ 등 관련 내용 효력을 본안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의 결정 때까지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거나 고위험자로 분류된 수험생과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 판정을 받은 수험생도 각각 병원·생활치료시설이나 시험장 내 별도 공간에서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됐다.

“전염병,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돼” 

고사장인 연세대와 중앙대에서 확진자까지 나와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더했다. 수험생들은 4일 질병관리청과 서울시장, 서울 서대문구청장과 동작구청장을 상대로 시험장 코로나19 역학조사를 실시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시험 장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지방자치단체가 접촉자를 역학 조사하지 않는 건 코로나19 대응 방침을 어긴 것과 다름없다는 의도에서다.

소송대리인인 방효경 변호사(법무법인 피엔케이)는 “확진자가 매일 1000명 이상 나오는 현실에서 개인이 감염을 통제할 수 없으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법무부는 헌법소원 이틀 뒤 헌법재판소(헌재)가 확진자 응시 제한에 관한 답변을 요구했는데도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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