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내 진로와 맞바꾼 위탁 엄마, 그 계기가 된 말

중앙일보

입력 2021.01.04 15:00

업데이트 2021.01.04 15:13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9)

은지는 곧 초등학생이 된다. 생후 11개월에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만난 은지는 곧 의젓한 초등학생이 된다. 지난주엔 은지가 다닐 초등학교에 취학등록을 하러 갔다.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 그간의 시간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2015년 초였다. 나는 새해를 맞아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보려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까 나도 나를 찾고 싶었다.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을 보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등록금을 내고 3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전공 서적을 뒤적였다. 꽃피는 봄이 오면 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밟을 상상을 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신문을 읽었다. 40대 중반에 다시 공부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중년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던 때다. 그러니까 못하겠다고, 지금은 아니라고,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진 pixabay]

내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중년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던 때다. 그러니까 못하겠다고, 지금은 아니라고,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진 pixabay]

“안녕하세요. 제주 가정위탁지원센터에요.”

내가 위탁 부모 신청을 해놓은 곳이었다.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내 인생을 조금 의미 있게 살아보고 싶어 신청했었다. 입양은 평생 책임져야 하지만 가정위탁은 한시적이니까 예비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후 10개월 된 여자아기가 있는데요. 지금은 친엄마랑 미혼모 시설에 살고 있어요. 친엄마는 스무 살이고요,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에요.”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내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중년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던 때다. 그러니까 못하겠다고, 지금은 아니라고,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만약 제가 못한다고 하면, 그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른 분을 또 찾아봐야죠. 그래도 못 찾으면….”

혈연관계가 아닌 일반 위탁 부모를 찾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다. 만약 위탁 부모를 못 찾으면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얼굴 한번 못 본 아기지만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는 얘기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온몸으로 은지 엄마가 되어 갔다. 단기간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위탁은 기간을 연장하며 7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어 다니던 은지는 곧 초등학생이 된다. [사진 pixabay]

온몸으로 은지 엄마가 되어 갔다. 단기간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위탁은 기간을 연장하며 7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어 다니던 은지는 곧 초등학생이 된다. [사진 pixabay]

내 진로를 위해 은지를 포기할 것인지, 은지를 위해 내 진로를 포기할 것인지. 일주일간 고민했다. 고민하고, 흔들리고, 거절할 말을 찾다가 결국 내 진로를 포기하기로 했다.

어쩌면 보육원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랫동안 만나오던 보육원 아이들은 직접 요리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급식을 먹지만 직접 요리해 볼 수는 없다고…. 어떤 아이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 외로움, 단체생활에서 느끼는 제약도 토로했다.

2015년 새해와 함께 은지를 만났다.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은지를 만나러 미혼모 시설에 갔다. 은지에게 줄 인형을 사고, 친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주 후, 은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젖병을 소독하고, 분유를 타고, 안아주고, 업어주는 일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 그때부터 온몸으로 은지 엄마가 되어 갔다. 단기간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위탁은 기간을 연장하며 7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어 다니던 은지는 곧 초등학생이 된다.

은지의 취학 접수증. [사진 배은희]

은지의 취학 접수증. [사진 배은희]

취학통지서를 들고 학교로 걸어가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은지의 학교생활을 상상했다. 은지는 친구를 잘 사귈까? 알림장은 제대로 쓸까? 자기 물건은 잘 챙길까? 받아쓰기는 할까?

은지 덕분에 나도 3월엔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다. 알림장을 확인하고, 숙제를 봐주고, 가방을 챙기고, 교통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게 또 낯설고 어색하다. 50대에 초등학교 학부모라니.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기대되는 한해다.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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