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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였다...이게 메르켈 인기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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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31일(현지시간) 마지막 신년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31일(현지시간) 마지막 신년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올해 권좌에서 내려온다. 2005년 11월, 독일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지 16년 만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의 신년사가 더 주목받았던 이유다. 그가 현직 총리로서 내놓는 마지막 신년사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에 집중 #“9월 퇴임, 독일 혼돈 빠질 조짐”

독일에서 지도자의 신년사는 빌헬름 2세(1859~1941) 때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이다. 총리의 신년사는 정치 철학과 당면 과제를 녹여낸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그간 메르켈 총리의 신년사 역시 기후변화부터 유럽연합(EU)의 통합까지, 다양한 주제를 망라했다. 그러나 마지막 신년사는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중했다.

지난달 12일 의회에 출석하며 마스크를 착용하는 메르켈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의회에 출석하며 마스크를 착용하는 메르켈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금빛 재킷을 입고 등장해 “지난 15년 (재임) 동안 이렇게 힘든 겨울이 있었나 싶다”며 “이 혹독한 겨울은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2021년은 절망이 끝나리란 희망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팬데믹은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위기”라며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적 도전을 안겼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총리 신년사 역사상 주제 하나만을 다뤘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라며 메르켈 총리가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코로나19에 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NYT는 이런 모습을 “메르켈 총리가 역대 독일 유력 정치인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이유”라고 지적하고 “코로나19 이후에도 메르켈의 인기는 여전하고, 그의 후임이 누가 되든 그 인기를 못 따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지지율은 여전히 70%를 넘는다. 난민 포용 정책이 반발을 부르면서 한때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코로나19 위기에서 특유의 강인한 ‘무티(Muttiㆍ엄마) 리더십’으로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4연임을 끝으로 더이상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역시 2일 자 신년호에서 메르켈 리더십에 다시금 주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메르켈이 퇴임을 준비하면서 독일 국내 정치가 혼돈에 빠질 조짐”이라고 보도했다. ‘포스트 메르켈’은 안갯속이다. 한때 ‘리틀 메르켈’로 불렸던 여성 정치인 안네크레트크람프-카렌바우어국방장관은 지난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메르켈이 여당 기독민주당(CDU) 대표로 발탁해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튀링겐 주(州) 선거에서 극우세력과 손을 잡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자진 하차했다.

메르켈 총리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왼쪽)와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 등 동료 여성 지도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왼쪽)와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 등 동료 여성 지도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후 사회민주당(SPD)이 올라프 숄츠 부총리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상태이지만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빌트지에 따르면 메르켈의 CDU에선 41세인 옌스슈판 보건부 장관이 후보로 유력하다. 그러나 당선 안정권에 들어선 후보는 없다는 게 이코노미스트ㆍNYT의 공통된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메르켈이 강력히 자리 잡고 있다”며 “슈판 장관조차도 메르켈의 그림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후계자를 지목하고 안정적으로 정권 이양을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도전 과제가 됐다.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한 헬무트 콜전 총리(왼쪽). [중앙포토]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한 헬무트 콜전 총리(왼쪽). [중앙포토]

외교부문에서도 EU의 정신적 맹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8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 석상에선 관세 폭탄을 던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따지는 듯한 장면의 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지난해엔 EU 의장직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은 지난달 메르켈 총리에게 “엄청난 시기에 의장직을 멋지게 소화했다”며 갈채를 보냈다.

2018년 G7 회의를 상징한 한 장면.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갈등 구도가 잘 드러난다.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G7 회의를 상징한 한 장면.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갈등 구도가 잘 드러난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1990년 독일 통일 이전 동독의 물리학자 출신으로, 헬무트 콜 총리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콜 총리의 ‘정치적 양녀’로 통하며 정치 근육을 키웠다. 콜 총리와 CDU 지도부가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콜 총리의 정계 은퇴를 앞장서 요구하면서 존재감을 높였다.

강력한 리더십 이면의 소탈한 풍모로도 주목받았다. 와인이며 식료품을 직접 쇼핑하며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머리를 채 말리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기자들에겐 “내가 어디에서 쇼핑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안 가르쳐줄 것”이라며 웃으며 농담하기도 했다. 이혼 등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겪었으나 그는 "나를 더 단단한 여성으로 만들어준 시련에 감사하다"며 강인한 면모를 보였다.

독일의 차기 총리는 오는 9월 결정될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후임 후보자들은 모두 ‘메르켈 보너스 효과’를 노리고 있지만 아무도 메르켈만 한 인기를 구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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