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판결에 울고 웃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기자

박태인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날. 방청석에 앉아있던 정 교수의 지지자들은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반면 법정 밖에서 판결 속보를 접한 보수 유튜버들은 포효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큰 환호성이 법원 2층 기자실까지 들려왔다. 두 날 모두 기사 마감으로 한해 중 가장 바쁜 하루였다.

이 두 장면은 계속 머릿속에 남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타인의 판결에 울고 웃는 사회는 정상인가. 무엇이 양 진영의 사람을 법원만 바라보게 했을까. 법은 도덕과 정의의 최소한일 뿐이다. 한 판사의 결정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나라. 그런 사회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3일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날 법정구속됐다. 우상조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3일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날 법정구속됐다. 우상조 기자

정 교수와 김 지사 사건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두 피고인 모두 같은 로펌의 판사 출신 변호인단을 고용했다. 법정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 전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옮기거나 삭제했다. 여권과 지지자들, 그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유력 인사들이 두 사람에게 유리한 재판 소식만을 골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했다.

그렇게 사회는 갈라졌고, 선고 전까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점차 희미해졌다. 이 사건을 수사부터 판결까지 취재했던 기자에게도 판결 결과가 가슴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세상에선 정경심과 김경수는 무죄였다. 두 사람의 유죄 판결은 내 기사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사실을 쓰는 데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만약 두 사람이 수사 전, 수사 중, 판결 전에 잘못을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정 교수의 남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 대정부질문에서 조금 더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여권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면, 유시민과 김어준·유튜버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어줬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은 두 사람의 판결에 환호하지도, 펑펑 울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사회가 이렇게 갈라질 만큼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의를 세울 기회는 판결 전에도 수십번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제 판사 탄핵과 사법 개혁을 외친다.

판결에 울고 웃는 사회는 정의가 후퇴한 사회다. 명문대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소수에게 기대지 않고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을 뿐이다.

김 지사의 실형 뒤 기자실까지 들린 포효, 정 교수의 법정 구속 전 방청석에서 펑펑 울던 지지자. 지난 2년간 법조 취재를 하며 가장 우려스러운 순간이었다.

박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