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앞당긴 원격시대, 종이문서 더 빨리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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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기업들은 종이 결재판을 없애고 온라인 기반 보고를 늘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제철이 도입한 전자결재시스템. [사진 현대제철]

기업들은 종이 결재판을 없애고 온라인 기반 보고를 늘리고 있다. 사진은 현대제철이 도입한 전자결재시스템. [사진 현대제철]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보험업계 최초로 보험·대출 등 모든 업무 문서를 전자문서로 전환했다. 창구를 찾은 고객은 별도의 종이 서류 없이, 디지털 터치모니터로 상담을 받고 상품을 신청한다. 고객 관련 서류는 모두 전자화 서식으로 전환해 보관한다. 이미 이와 비슷한 디지털 창구를 도입한 신한·국민은행 등은 종이통장 줄이기 캠페인을 함께 시행 중이다. 정보기술(IT)·핀테크의 발전으로 아날로그 종이 문서 대신 디지털 전자매체를 통해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페이퍼리스(Paperless) 시대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 내려받은 건 수
올해 1612만건, 1년 새 4배로

효율 높이고, 자원 소모 줄지만
디지털 소외계층 소외 부작용도

3일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가장 적극적인 곳은 금융업계다. 인터넷 뱅킹과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하면서 종이 문서의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고객 입장에서도 통장개설·상품가입 때 서명 절차 등이 간단해져 불편이 줄어든다. NH농협은행은 최근 공무원연금공단·금융결제원과 데이터를 연계해 블록체인 기반 자동 대출 자격정보검증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종이 융자추천서 발급·제출 없이 대출할 수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서류를 없애 업무 효율을 개선할 수 있고, 자원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카카오페이와 같은 신금융 서비스에 대한 견제 목적도 있다.

점차 줄어드는 국내 인쇄용지 생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점차 줄어드는 국내 인쇄용지 생산.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유통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22년까지 종이 영수증 발급 제로를 목표로 전자 영수증 발급 서비스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 종이 영수증 대신 모바일 앱을 통해 영수증을 자동 발급하는 형태다. 또 매장 내 할인 안내 등에 사용하는 각종 종이 가격표도 전자 가격표시기 등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다른 백화점·대형마트 등에서도 전자 영수증을 확대하고 있다. 영수증을 따로 보관하는 불편을 해소하고, 종이 영수증에서 검출되는 비스페놀A 등 환경 호르몬을 줄일 수 있다.

교육계에서도 코로나19 여파로 원격수업이 보편화하면서 페이퍼리스 바람이 불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사·학생 등이 디지털 교과서를 내려받은 건수가 2019년 3~10월 396만7027건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1612만4621건으로 4배 늘었다. 주요 대기업들은 온라인 기반 보고·결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회의실 등에 전자 칠판을 도입한 지 오래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인쇄물이 아닌 파일로 제작해 공개하는 곳도 많다. 건설현장에서는 종이 도면 대신 태블릿PC로 도면·기술정보 등을 확인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오프라인상의 등기우편과 같이 송·수신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문서 유통량은 2017년 294만건, 2018년 443만건, 2019년 1380만건, 지난해 3분기까지 2700만건 등으로 급증세다. 반면 페이퍼리스 확산으로 내수용 인쇄용지 생산량은 2015년 167만1500t에서 2019년 145만1127t으로(한국제지연합회 자료)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문서 관리에 필요한 비용 절감 효과는 물론, 업무처리 속도와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데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공인전자문서중계자를 통한 전자문서 유통 건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공인전자문서중계자를 통한 전자문서 유통 건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관련 산업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카카오페이·NHN페이코 등 핀테크 업체들은 각종 요금·청구서를 확인·납부하는 모바일 전자고지는 물론, 각종 전자 증명서를 관리할 수 있는 전자문서지갑 서비스를 선보였다. 주요 이동통신사들은 전자문서 통합 플랫폼을 출시했고, 후지제록스·신도리코 같은 전통적인 사무기기 업체도 전자문서의 활용도를 높이는 문서관리 솔루션을 내놓았다.

정부는 전자문서의 효력을 명확히 하고, 각종 규제를 푼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이 지난달 10일부터 시행되면서 시장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허성욱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관은 “전자문서 활용 확산 및 데이터 축적이 빨라지고 종이 없는 사회 실현을 촉진할 것”이라며  “2023년까지 약 1조1000억원의 비용이 절감되고, 2조1000억원 규모의 신규시장 창출 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IT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저소득층·외국인 등 이른바 디지털 소외계층은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각종 금융거래나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 불편이 커질 수 있다.

보안 이슈처럼 페이퍼리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예컨대 종이에 기록된 정보는 아예 찢어버리면 정보 자체가 사라진다. 해당 문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막아도 유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전자 매체에 저장된 정보는 유통·보관과정에서 재생산되기 쉽고, 해킹 및 정보유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종이 문서 위주의 관행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일부 매장에선 소비자가 전자영수증을 제시해 환불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외부감사 등에서 여전히 종이 영수증만 증빙 자료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병원에서는 최근 모바일 앱으로 처방전을 전송하는 전자처방전을 도입했지만 환자·약국들이 시스템 운영 여부를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이용률이 저조한 형편이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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