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필리핀보다 못한 한국 노인 복지…OECD국 맞나?

중앙일보

입력 2021.01.02 15:00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85) 

한 해가 저물고 한해가 시작됐다. 연말연시, 세모라는 말이 이제는 덤덤하다. 2020년 한 해 동안 갑갑하게 산 것을 생각하면 새해가 돌아온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도 백신이나 치료제 소식이 들려오니 희망이 보인다. 2021년 2월쯤에 노인부터 백신을 맞힌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 소식을 어르신께 들려 드리니 별말씀이 없으시다. 담담하시다. 이게 다 코로나19 덕분이다.

지금 농촌의 노인은 갑갑하다. 마을 회관은 폐쇄되었다. 경로당도 문을 닫았다. 연말이면 벌어지던 노인을 위한 행사는 없어졌다. 김장이니 축제니 하는 것도 없어졌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이니 함부로 모였다가는 큰일이다. 농촌 마을 공동 급식 지원 사업도 간당간당하다. 모여서 노는 건 둘째치고 밥 먹는 것도 힘들다. 노인에게 격리와 고독이 큰 위협으로 다가왔지만 지금 더 큰 문제가 우리 사회에 닥쳐 있으니 화젯거리도 안 된다.

농촌이 고령화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다. 농촌의 면 단위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은 38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6만5000명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공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다. 노인 치매가 문제라고 하는데 농촌 노인의 치매는 완전히 사각지대다. 그리고 시골 노인을 노린 보이스 피싱이 극성이다. 노인에게 필요한 의료·교통·주거·일자리 등의 복지가 절실하다.

지난 12월에 취임한 김호일 신임 노인회장은 장수가 재앙인 시대라고 말한다. 영국의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전 세계 9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노인복지지표(GAWI, 2015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44점으로 60위다. 태국(34위)과 베트남(41위), 필리핀(50위)보다 낮다.

농촌의 면 단위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은 38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6만5000명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공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사진 pixabay]

농촌의 면 단위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은 38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6만5000명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공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사진 pixabay]

농촌의 노인을 위한 복지 사업이 여러 가지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농협을 활용한 노인 돌봄 사업이 눈에 띈다. 농협에 요양원이나 재가돌봄센터 등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지자체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인주 농협 요양원을 비롯해 15개 농협이 참여하고 있다.

의정부 농협은 대한노인회 의정부시지회와 협력해 농촌인력 중개센터 협력사업을 벌였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와 일자리를 구하는 어르신을 매칭해 농촌 인력난 해소와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다. 올해에만 4300여명의 어르신이 의정부농협을 통해 농가와 연결됐다.

대전시 노인 복지관은 지역의 농촌 마을인 무수천하마을과 협약을 맺고 도시와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 간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사업을 하고 있다. 노인만 사는 마을에 더는 어린이와 젊은이가 찾아가지 않으니 노인과 노인이 서로 소통하면서 정서적으로 연대하자는 취지이다. 매우 긍정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북연구원은 이슈브리핑 ‘사회재난 코로나19, 전북 농촌 노인의 일상 위기를 극복하자!’(통권 230호)를 발간하고, 코로나19에 따른 농촌 노인의 심리불안, 스트레스 등 심리 지원을 위한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의 코로나19 경험자의 심리안정을 위한 방안이 정보 제공 수준에 그치고 있으니, 재난 경험자에게 직접 장기적·체계적 심리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특히 농촌은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구성원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 상호 심리·정서 및 생활 돌봄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촌 노인이 직면한 건강·경제 문제는 도시 노인보다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목소리가 작더라도 외면할 수는 없다. [사진 pixabay]

농촌 노인이 직면한 건강·경제 문제는 도시 노인보다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목소리가 작더라도 외면할 수는 없다. [사진 pixabay]

농촌의 노인에게 심리적 돌봄과 함께 생활 돌봄도 절실하다. 그러나 농촌이 존재하는 지자체의 현실이 녹록지 않으므로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농촌의 노인은 70세가 넘어도 은퇴하지 않은, 또는 은퇴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농민 기본 소득과 농민 수당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지역 사회의 붕괴를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 로컬 푸드 판매장 활성화도 농촌 노인 돌봄 사업이 될 수 있다. 농산물 경매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고령농가에 로컬 푸드 판매장은 노인들의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보장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추진됐던 ‘농촌 건강 장수 마을 사업’, ‘노인 함께 돌봄 사업’, ‘농촌 노인 건강 생활 지원 사업’, ‘맞춤형 주거 환경 개선 사업’ 등이 좀 더 현실에 맞게 추진되어 노인이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농촌 노인이 직면한 건강·경제 문제는 도시 노인보다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목소리가 작더라도 외면할 수 없다. 농촌 지역의 생활 환경 개선, 노인 복지 기반 확충, 경제적 지원,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케어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농촌 노인을 위한 노력이 귀농·귀촌 활성화의 척도가 될 수 있겠다. 귀농·귀촌하려는 사람은 농촌 노인과 원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귀농·귀촌 희망자는 앞으로 살고자 하는 마을의 노인이 행복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노인의 모습이 나의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슬로우 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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