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갈등정치 종식할 백신도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2 00:30

업데이트 2021.01.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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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백신(vaccine)은 ‘암소’를 일컫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한 말이다. 프랑스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독성을 약화시켜 인체에 투입하는 균을 백신, 그것을 사용해 감염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접종(vaccination)이라 칭한 데서 비롯됐다.

백신이란 말이 소에서 나왔듯
2021년 소의 해 운명처럼 왔다
백신으로 코로나19 극복하듯
갈등 바이러스도 종식하자

파스퇴르의 작명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것은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다. 알다시피 종두법(種痘法)을 창안해 인류를 천연두에서 구해낸 인물이다. 그는 개업한 고향 마을에서 젖소의 젖을 짜다 우두(牛痘)에 걸린 적이 있는 여인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제너가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낸 종두법을 파스퇴르가 발전시켜 이름까지 붙여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는 인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고통받는 인류의 희망이 오직 소에서 이름을 얻은 백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화이자건 모더나건, 얀센이건 아스트라제네카건, 제너와 파스퇴르의 후학들은 또다시 인류를 구해낼 것이다. 제너가 첫 임상 시험을 하고 천연두가 사라지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복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릴 게 분명하다. 더욱 분명한 것은 그 기간이 얼마가 됐건 올해가 코로나 극복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완벽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우리, 일반 시민들이 할 일은 오직 한가지다. 계속 조심하는 것 말이다. 과학자와 의료진을 믿고 기다리며 방역당국의 지침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제 벗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손을 자주 깨끗이 씻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금 더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혼자 있지 않으면 영원히 혼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살벌한 표어나, 일반 마스크와 산소마스크를 놓고 ‘어느 마스크를 쓰겠습니까’라고 묻는 겁나는 포스터와 더 오래 공생할 수밖에 없다.

선데이 칼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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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삼가야 할 것은 지금의 위기를 달리 이용하는 짓이다. 자기편, 자기 무리, 그 얄팍한 자기 진영의 이익에 맞춰 분노와 칭찬을 선택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거짓으로 이끌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흔히 그렇기 쉽고 그러고 싶다. 미국 작가 앰브로스비어스가 일찌감치 간파한 대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악마의 사전』에서 ‘재난’을 이렇게 정의했다. “재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리에게는 불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는 것.”

코로나는 누구에게도 행운일 수 없다. 몇몇 제약회사와 바이오회사가 백신과 진단키트로 기회를 잡았지만, 그것은 준비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이지 거저 누린 행운이 아니다.

그런 실력도 없으면서 코로나를 행운으로 생각하고 악용하려는 무리가 분명히 있다. 그들은 코로나가 만들어내는 각종 상황들을 왜곡하고 과장한다. 또 다른 무리들은 사실을 숨기고 거짓을 지어내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 한다.

이런 행동들은 과학자들과 방역당국을 힘들게 만들고, 코로나 극복을 방해할 뿐이다. 결국 국민을 궁지로 몰고, 궁극적으로 자기 진영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다. 어떤 진영이건 국민을 궁지로 모는 게 목적은 아닐 테니 말이다.

국민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백신을 맞아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뿐 아니라, 강력한 정치 백신을 맞아 그런 무리들이 퍼뜨리는 갈등 바이러스에 항체를 만들고 보다 강력한 면역력을 생성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여러 차례 정치 백신을 맞아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내 ‘잘못 찍은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자성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백신 성능이 너무 떨어져 이내 항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선거 때마다 수많은 ‘갈등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국민이 백신의 성능을 과신한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변이 바이러스들이 발생하는데 낡은 백신만 믿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강력한 백신이 나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자유로워진다 해도 손 씻기와 기침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강력한 정치 백신을 맞았다 하더라도 유권자는 자신이 뽑은 공직자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거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한해 코로나 창궐로 신음하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패거리의 이익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날뛰는 무리를 너무나 많이 봤다. 오만해선지 무식해선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서슴없이 외치는 인간 군상들을 수없이 봤다. 돌아서면 탄로 날 거짓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늘어놓는 철면피들을 질리도록 만났다. 세상이 아무리 잘못 돌아가도 내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들이 걸음마다 발에 차이는 경험을 했다.

어디서든 기침 예절을 지키듯, 이들의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기억해야 한다. 더러워진 손을 씻듯, 이들을 씻어내 하수구로 떠내려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올해를 코로나 극복의 원년뿐 아니라, 저급한 갈등정치 종식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2021년 ‘소의 해’는 그렇게 운명처럼 우리에게 왔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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