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응답하라 2021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2 00:26

지면보기

718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삶이 의미 있음은 말을 거는 데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태생적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의 존재를 매 순간 확인하게 된다며 이같이 삶을 정의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비대면 일상이 지속되면서 나름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결국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소통 방식을 찾아서라도 말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국민의 말에 응답하는 게 정치
남 탓 전에 자신부터 돌아볼 때

신영복 선생이 강조한 것 또한 ‘관계’였다. “내가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만들고,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만든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맺어온 사회적 관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버드대 연구팀도 지난 70년간 조사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를 떠나서는 온전한 객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 인간은 각자의 자아를 인지하고, 확인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정치인, 여당과 야당이 말을 걸고 말을 받을 때 정치의 존재 근거가 비로소 확보된다. 그 관계가 건강해야 국가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인들은 말을 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토론이 부재한 사회가 그 결과물이다. 토론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으냐를 찾은 행위지만 학교에서 토론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는 게 토론의 목표가 돼버린 지 오래다. “토론장에 들어가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생사를 건 검투사처럼 결연하기 짝이 없다”는 최재천 교수의 탄식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왜 무서운지 일찍이 꿰뚫어 본 유발 하라리의 경고는 그런 의미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바이러스는 정확히 사람이 맺은 관계망을 따라 옮고 퍼져 나간다. 인간이란 종이 가장 잘하는 행위를 이용해 자기들은 성공을 거두고 반대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증오·배제·이기심의 바이러스도 인간이 맺은 관계를 통해 확산된다. 하지만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훨씬 더 치명적이다. 게다가 권력 지향적 인간들은 오히려 이를 증폭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아시타비(我是他非)엔 여야가 따로 없는 게 한국 정치의 불행한 현실이다.

새해를 맞아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는 남 탓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그간의 경험칙에 비춰볼 때 테스형의 충고가 한국 정치엔 부질없다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체념만 할 순 없지 않은가. 2021년 한국 사회엔 코로나 공습에 맞서 힘을 합하긴커녕 사리사욕에 눈이 먼 코비디엇(Covidiot·Covid19+idiot) 정치인들만 득세했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으려면 지금이야말로 유권자들이 깨어 감시해야 할 때다. 옛말에도 나쁜 정치는 굶주린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하지 않았나.

국민이 말을 걸면 정치인은 그 말에 응답해야 한다. 그게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리인이 수행해야 할 제1의 책무이자 코로나 시대 한국 정치가 언택트(untact)를 넘어 온택트(ontact)로, 불통을 넘어 소통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삶이 의미 있음이 말을 거는 데 있다면 정치가 의미 있음은 그 말을 듣고 응답하는 데 있다. 응답하라 2021.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제대로 응답하는지 아니면 자기주장만 고집하는지 판단은 진정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