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맛집 등 마음에 안 들면 ‘평점 테러’, 공정성 시비 끊이지 않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2 00:22

업데이트 2021.01.0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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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호 08면

한국은 ‘평점 사회’ 

지난해 8월 20일 개봉한 영화 ‘69세’는 젊은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노년 여성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영화의 네이버 네티즌 평점은 1일 현재 9.3점이지만, 개봉 다음날이었던 8월 21일에는 2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이른바 ‘평점 테러’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이 몰려와 “개연성이 없다, 망상이다”라며 악플을 달고 1점을 매겼다. 그러자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과 네티즌들은 반대로 높은 점수를 주며 응원을 보냈고 평점은 다시 올라갔다.

네티즌들 평점, 영화 흥행에 영향
제작사, 댓글 알바 동원해 맞불도
미쉐린 가이드도 ‘별’ 거래설 논란

영화 ‘82년생 김지영’ 메인 포스터.

영화 ‘82년생 김지영’ 메인 포스터.

특정 영화에 대한 평점 테러는 종종 반복됐다. 평범한 여성이 일상 속에서 겪는 차별적 현실을 담아낸 영화 ‘82년생 김지영’ 역시 2019년 10월 개봉 당시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평점 테러에 대응해 일부 관객들은 ‘N차 관람(반복해서 관람)’ ‘영혼 보내기(예매는 하지만 실제 관람은 하지 않음)’ 등으로 영화에 대한 지지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여성 서사를 그려낸 영화 ‘걸캅스’ ‘캡틴 마블’도 마찬가지였다. 또 영화 ‘군함도’나 ‘국제시장’, ‘변호인’처럼 정치적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점 테러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영화 시장에 도입된 네티즌 평점은 해당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를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됐다. 영화평론가와 같은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대중의 호응을 얻는 작품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네티즌 평점이 영화 흥행에 영향을 주게 되자 영화사들은 소위 ‘댓글 알바’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평점을 높이는 ‘마케팅 기술’을 쓰기도 했다.

평점이 공신력을 잃자 일각에서는 실제 관람객에게만 평가 권한을 주거나 평점 기능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평점 시스템 그 자체보다는 이를 악용하는 비정상적 행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포털 사이트나 극장이 하지 않더라도 평점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별점이 엄지손가락이 되거나 토마토로 바뀐다 해도 점수를 매기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며 “평가자의 수가 많아지면 평점 테러나 조작의 영향력은 작아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평점 테러와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논란’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만들어 대개는 영화 흥행에 악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미식업계도 별점의 공신력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5년 전부터 서울판을 발간하고 있는 120년 역사의 레스토랑 가이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는 2019년 뒷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미쉐린 가이드는 레스토랑 등급에 따라 별점을 부여한다. 별 3개가 만점인데 별 2개만 받아도 당장 레스토랑 매출이 50%나 상승할 정도다.

한 음식점 대표는 미쉐린 측이 컨설팅 명목으로 수천만 원의 비용을 요구하고 미리 방문 날짜와 평가 내용을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논란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18년에는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스타셰프 어윤권씨가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미쉐린 가이드의 구체적인 심사 기준과 방법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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