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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들 ‘별점 노예’처럼 생활…평점 ‘어두운 그림자’ 갈수록 짙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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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호 09면

한국은 ‘평점 사회’ 

‘피지털(phygital)’이란 용어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피지컬’(물질)과 ‘디지털’(비물질)이 합성된 신조어다. 디지털과 물리적인 것의 혼합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오늘날 ‘피지털’ 개념은 이 보다 훨씬 더 광의의 의미로 쓰인다. 이를테면, 이는 디지털 세계의 기술 논리가 물질계의 지형과 배치를 좌우하는 새로운 기술과잉 현실을 지칭하는데 쓰인다.

부정적 징후 보이는 평판사회 #서비스 민주화 돕지만 부작용 많아 #온라인 정거장 같은 플랫폼 막강 #조작·가짜 가려내고 공생 꾀해야

오늘날 ‘피지털’의 면모를 보자. 소비자들은 개인 스마트 앱들을 갖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불호를 별점, 좋아요, 댓글 등으로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의 온라인 평점은 누군가의 신용과 실물 자산의 가치 등락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당연히 소비자들이 각자 개별적으로 매긴 별점들에 기업과 상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온라인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비스 개선을 모색한다. 자본 규모나 입지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누군가의 능력과 평판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여럿이 함께 매긴 별점과 평점의 합이 좀 더 소비자 스스로 지혜로운 판단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달리 말하면 다양한 평점 조각들이 모여 합쳐지면서 소비자들의 집합적 소비 행위의 민주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피지털 효과로 생긴, 이른바 ‘평점 사회’의 긍정적 모습들이다.

‘평점 사회’의 바탕은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주로 구축된다. 플랫폼은 데이터, 영상, 배달, 돌봄, 알바, 자동차, 잠자리 등 유무형 자원들의 거래가 이뤄지는 분주한 온라인 정거장과 같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들이 이를 돕는 플랫폼 장치 노릇을 한다. 플랫폼은 물질 자원의 중개는 물론이고, 정보와 데이터 등 비물질 자원과 지적 상품을 생산하고 매개하고 소비하도록 돕는다.

문제는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평점 사회’의 이점에 비해 날이 갈수록 우리 현실 속에 부정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는 데 있다. 가령, 영세 상점과 식당에 오른 배달앱 리뷰로 인해 가게 매출이 휘청거리는 일이 흔하다. 조회수와 인증샷 등 주목 효과만으로 쉽게 호객이 이뤄지고, 때론 이로 인해 어떤 지역에는 젠트리피케이션 효과까지 유발한다.

별점과 댓글은 현실 플랫폼 노동의 질까지 바꾸고 있다. 플랫폼 앱은 이미 전통적 고용 계약 관계를 해체하고, 많은 이들을 위태로운 프리랜서 노동자의 지위로 내몰고 있다.

배달 및 택배 노동, 가사와 돌봄 노동 등 단기 서비스 노동자들의 생존은 주로 고객들이 매긴 별점 값에 따라 쉽게 좌우된다. 여기서 고객 별점과 평점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고과 지표처럼 기능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의도하건 아니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 수행성에 별점을 매기며 마치 중간 관리자가 되고, 노동자들은 그 ‘별점 노동’의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 재난 상황이 오고 점점 비대면 ‘언텍트’ 관계를 강조하면서, 시민들 대부분은 집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트를 체험하고, 보다 안전한 플랫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비대면 현실에서 가상 플랫폼을 매개해 다수의 이용자가 평판을 생성하는 방식은, 소비자들의 미래 선택을 돕는 꽤 합리적인 통계 과학처럼 보인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은 뒷광고, 평판 조작, 댓글부대, 가짜뉴스 등에 의해 실물의 평판 측정이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점을 매번 망각한다. 더 근원적 문제는 이용자 클릭으로 만들어진 순위, 점수, 별점이란 것 또한 외부 물질세계에 대해 양적으로 계측된 아주 작은 단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평판 사회’가 우리의 일상이 된, 아니 이를 극한으로 밀고가면 어떤 모습이 그려질까? 이미 그 디스토피안적(미래 비관적) 징후는 존재한다. 이를테면, 중국은 이른바 ‘사회신용시스템’이란 평판 체제를 시장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도시 중국인들의 일상 삶은 추적되어 계측되고 국가가 운영하는 평점 시스템의 산식에 의해 정밀 계산된다. 계산된 숫자는 개별 인민의 사회신용 점수가 되면서, 이에 맞춰 삶의 질과 운신의 폭이 결정된다. 그럴수록 인민들은 매사 평점에 민감해지고, 체제의 신용 점수값에 순응하는 인민 의식과 행동 패턴에 쉽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기술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이끌기도 하지만, 인간은 기술을 주체적으로 변형하고 새롭게 해석해 재구성하기도 한다. 후자의 견지에서, 인간은 물질과 비물질이 병합된 피지털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낸 포용적 기술의 미래를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플랫폼 기술에 다치지 않고 어떻게 이로부터 노동의 연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조작과 가짜 평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찾아내 격리할지, 별점과 평점의 숫자를 ‘랭킹(순위)’ 시스템이 아닌 공감이나 상생 지수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 가상의 디지털에 속박된 물리적 사물의 질적 가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등, 좀 더 우리 사회 ‘별점의 사회학’에 대한 심층 논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상 플랫폼에 의한 물질세계의 황폐화가 아닌, 플랫폼을 매개한 공생과 화합을 모색하는 방법이리라.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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