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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국가·기업 코로나 백신 개발 혁신 이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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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호 26면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1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해 보급 중인 코로나19 백신. 2 지난달 30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몰리네테병원에서 의사·간호사·의료종사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FP·EPA=연합뉴스]

1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해 보급 중인 코로나19 백신. 2 지난달 30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몰리네테병원에서 의사·간호사·의료종사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AFP·EPA=연합뉴스]

지난달 1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긴급 승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은 메신저 mRNA 기반의 새로운 유형이다. 죽거나 약해진 바이러스를 담은 전통적인 백신과 달리 이 백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쇠뿔모양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 생성 방법을 담은 메신저 mRNA를 주입해 스파이크를 사람의 세포 속에 미리 만들어 면역력을 생성한다. 임상 실험에서 90% 이상의 백신 효능을 보였다.

독일 바이오엔테크 백신 첫 개발 #기업 연구 역량에 정부 전폭 지원 #과학 최강 미국 제치고 성공 신화 #큐어백·모더나 같은 세계적 기업도 #성공한 민간 혁신가 투자 도움받아 #한국도 민간이 대학혁신 투자해야

코로나 팬데믹이 아니었으면 mRNA 백신 기술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와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자본을 mRNA 백신 개발에 투입했다. 준비된 국가와 생명과학기업들이 이 기회를 타고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와 연대한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는 처음으로 미 FDA로부터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의 긴급 승인을 받았다. 일주일 차이로 미국 모더나도 FDA 승인을 받았다. 과학 최강국 미국이 mRNA 백신 개발 선두에 선 것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독일은 어떻게 미국보다도 빨리 mRNA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파괴적 혁신 앞당겨

독일의 안정된 정치와 전문가 집단이 이끄는 장기적 안목의 교육과학기술정책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엔테크 사례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과학기술연구에서 인간과 사회에 유의미한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바이오엔테크는 라인강변의 마인츠에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차로 서쪽으로 30분 가면 만나는 라인란트팔츠주 주도인 마인츠는 구텐베르크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인근 도시 다름슈타트에는 352년 역사의 제약 바이오 회사 머크가 있다. 라인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루트비히스하펜이 나오는데 이곳에 유럽 최대 화학회사 BASF가 있다.

2008년 바이오엔테크를 창업한 최고경영자(CEO) 우구르 사힌 박사와 최고의료책임자인 그의 아내 외즐렘 튀레지 박사는 터키 이민자 2세다. 이민자의 성실과 끈기로 평생 정밀 암면역요법 연구와 창업을 함께해 온 이 부부는 바이오엔테크 이전에도 생명과학 가니메트(Ganymed)를 2001년 공동창업해 2016년 일본 제약회사 아스텔라스에 4억6000만 달러에 매각했다.

바이오엔테크의 비전은 개인화한 정밀 암치료이다. 사힌 박사는 구텐베르크마인츠대학의 의과대학 교수로서 중개종양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실험실에서 임상까지 연계된 개인화 면역요법 연구를 이끌어 왔다. 2019년에는 환자의 돌연변이 프로파일에 맞춘 mRNA 백신 연구로 독일 암연구상을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2020년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팀이다.

바이오엔테크 성공 뒤에는 2008년 창업 자금 1억5000만 유로를 투자한 두 명의 슈트륑만(Struengmann) 형제가 있다. 사힌 부부의 첫 번째 벤처에도 투자했던 이 형제는 자신들의 제네릭 제약회사를 글로벌 제약회사 노바티스에 매각한 자금으로 과학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하고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헝가리 출신으로 30년 이상 역경을 견디며 mRNA 연구를 해온 카탈린 카리코 박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쫓겨나자 그를 알아보고 2013년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또 다른 성공 요인이다. 그녀의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모더나의 창업자도 "그녀는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빠른 속도로 개발·보급하기 위해 바이오엔테크는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와 50대50 비율로 비용과 수익을 나누는 협력 체계를 지난해 3월 발표했다. 화이자가 초기 개발 비용을 모두 조달하고 지분 투자를 포함해 1억8500만 달러를 바이오엔테크에 현금으로 지불했다. 바이오엔테크에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독일 마인츠에 있는 바이오엔테크의 본사 건물. [사진 바이오엔테크 홈페이지]

독일 마인츠에 있는 바이오엔테크의 본사 건물. [사진 바이오엔테크 홈페이지]

독일 정부는 바이오엔테크에 올해 3억7500만 유로를 지원했다.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점적 백신 계약을 하려고 했던 큐어백(CureVac)에는 2억5200만 유로를 지원하고 3억 유로의 지분투자를 했다. 독일의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에너지부 장관이 나서서 독일을 매각할 수 없다고 미국에 공개적으로 항의한 후의 결정이다.

2000년 최초의 mRNA 회사로 설립된 큐어백은 독일 튀빙겐에 본사를 두고 있다. SAP 공동창업자 디트마르 호프는 거액을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됐다. 지난해 8월에 나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는 3상 임상실험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올해 보스턴에 위치한 모더나에 두 차례에 걸쳐 각각 4억8300만, 4억72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 회사는 데릭 로시 하버드 의대 교수의 연구를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로시 교수가 창업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하버드 동료 티모시 스프링거 교수의 자문과 소개를 받아 누바 아폐얀 현 이사회 의장, 로버트 랭어 MIT 교수 등과 2010년 공동창업했다.

초기에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자 로시 교수는 회사를 떠나 다른 생명과학회사를 창업했다. 모더나의 최대 지분을 보유한 아폐얀 의장은 레바논에서 온 아르메니아계 이민자이다. MIT에서 생명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4세부터 여러 회사를 창업했다. 이민자 DNA를 가진 그는 ‘편안함은 혁신의 방해 요소’라고 믿는다.

제도에 갇힌 한국 대학, 변화에 둔감

2010년 모더나에 투자한 500만 달러 덕분에 억만장자가 된 스프링거 교수는 그 자신이 1993년 바이오기술회사를 창업해 기업공개(IPO) 후 1999년 큰 제약회사에 매각했다. 검소한 생활을 하는 스프링거 교수는 생명과학자로서 확신이 가는 연구의 사업화에는 과감한 베팅을 한다. 하버드대학에 연구소 설립을 위해 1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스프링거 교수와 1990년대 비슷한 때 창업해 매각한 대금으로 구글 창업자들에게 10만 달러의 수표를 써 준 스탠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체리튼 교수도 20여 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도와줬다. 그는 현재 자산이 81억 달러이지만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한다. 자신이 공부한 캐나다 워털루대학에 3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워털루대학은 컴퓨터사이언스대학에 체리튼 교수의 이름을 붙여 예의를 표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기부를 통해 세상을 혁신하고 싶어 한다. 빌 게이츠가 자신과 아내의 이름으로 세운 재단을 통해 코로나 백신 연구 개발을 선제적으로 이끄는 등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다.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했던 폴 알렌은 2018년 사망할 때 260억 달러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알렌은 생전에 주립대인 워싱턴대학의 도서관과 컴퓨터과학부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워싱턴대학의 컴퓨터학부에는 폴 알렌의 이름이 붙어 있다.

알렌은 대학 기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의 기부금으로 대학 인근에 별도의 여러 민간 연구소를 세우고 연구소장과 주요 연구자들을 워싱턴대학의 교수들로 임명했다. 예를 들어 AI2라고 하는 알렌 AI 연구소는 알렌이 생전에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오렌 에치오니 워싱턴대 교수를 CEO로 임명했다. 인간과 사회에 필요한 혁신적 연구를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하기 위한 폴 알렌의 고민이 묻어 있다.

워싱턴대학은 주립대임에도 불구하고 소속 교수의 외부 겸직에 대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다. 이 대학의 수준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것과 시애틀이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한 것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대변혁의 시대에 혁신의 창조지가 되어야 할 대학이 과거의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에 갇혀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과 현실세계와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인적, 재정적 자원이 공급돼야 한다. 공공 재원과 공공 지배구조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고 변화의 속도도 너무 느리다. 우리나라도 민간의 성공한 혁신가들이 대학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민간 차원의 대학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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