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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산 자를 위한 납골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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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지난해 12월 말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디자인재단이 주관하는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의 최종 후보 10곳이 발표됐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여하는 이 상은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디자인한 프로젝트를 뽑는다. 세계 각국에서 뽑힌 후보군 면면을 보면 세네갈의 쓰레기 더미에 정원을 세우거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황폐한 시골 마을을 예술 중심지로 바꿨거나, 폐가를 호텔 방으로 개조해 지역 활성화를 한 일본 프로젝트 등이 꼽혔다. 세계의 필부필부(匹夫匹婦)가 좋은 공간에서 살게끔 노력한 현장이다.

최종 후보 중 한국 프로젝트가 딱 하나 있다. 납골당이다. 역설적이게도 죽은 자의 공간이 지속가능한 도시 후보로 꼽혔다.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에덴 낙원 메모리얼’이다. 최시영 디자이너(리빙엑시스 대표)가 디자인해 2017년 문 연 곳이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에덴 낙원 메모리얼’. [사진 리빙엑시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에덴 낙원 메모리얼’. [사진 리빙엑시스]

심사위원단은 “납골당을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교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납골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했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납골당에서는 결혼식이 열린다. SNS에서 검색하면 ‘이천 맛집’으로 뜬다.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가 운영하는 ‘세상의 모든 아침’ 에덴점이 있다. 티하우스에서는 차와 꽃꽂이 강습이 열린다. 호텔에 묵고 간 숙박객이 “힐링하고 간다”며 후기를 남긴다. 산 자가 납골당을 일부러 찾아와 즐긴다니. 언뜻 상상하기 어렵다. 납골당은 어둡고 슬프고 무거운 공간이지 않았던가. 대표적인 혐오시설이기도 하다. 납골당 역시 건립 초기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고정관념을 깨부순 건 디자인의 힘이다. 최시영 대표는 “정원이 중심에 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납골당의 정원 면적은 1만447㎡(약 3200평)에 달한다. 푸른 자연이 시설을 압도한다. 정원에서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과 식물은 셀 수 없이 많고, 이를 쫓아온 새와 벌로 생기가 넘친다. 최 대표는 이 정원을 중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산 자는 이곳에서 삶에 가까운 죽음을 어둡지 않게 돌아보고 나아간다. “정원은 우리에게 사색과 위로를 안겨준다”는 최 대표의 말처럼 자연은 철을 저절로 알게 한다.

미국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의 저서 『공간혁명』에 따르면 같은 주택단지라도 녹색 뜰이 있는 곳과 콘크리트로 포장된 뜰이 있는 곳 주민의 삶이 달랐다. 녹색 뜰이 있는 주민이 스트레스에 더 강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에 더 잘 대처했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인지 능력도 뛰어났다. 코로나 19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만, 부디 콘크리트 도시에 갇히지 말았으면 한다. 가까운 자연에서 철을 알아 가는, 싱싱한 푸른빛이 도는 신축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