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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부란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 있었겠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90)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대화도 그만큼 늘었겠지요. 일 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땠나요? 그 안에서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을까요? [사진 pixabay]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대화도 그만큼 늘었겠지요. 일 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땠나요? 그 안에서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을까요? [사진 pixabay]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함 속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2020년이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일 년의 긴 시간 동안 많은 불안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역으로 맑은 하늘과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 집콕과 초기엔 갑자기 늘어난 가족들의 시간이 또 다른 소통의 문제를 안겨주었지만, 예상보다 길어진 코로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대화도 그만큼 늘었겠지요. 일 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땠나요? 그 안에서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을까요?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에세이집을 읽었습니다. 책은 관계에 대한 짧은 글을 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는 작은 소제목에 담긴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유족이 임종을 보지 못한 어르신의 마지막 말은 마치 유언처럼 남게 되었고,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시 만나지 않게 된 누군가와의 마지막 말도 역시 유언이 된 셈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 같이 알고 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썼고, 점심에는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이 관계를 만듭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 나의 말이 상대를 향하기 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pixabay]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이 관계를 만듭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 나의 말이 상대를 향하기 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pixabay]

2020년 한 해 부부가 주고받은 말 중 유독 마음에 살아남은 말이 있을 겁니다. 감동의 순간이 떠올려지는 말도 있겠지만, 상처가 되어 가슴에 박힌 말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의 말이 나의 남편이나 아내의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기도 하겠죠. 박준 시인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내가 남긴 그 말은 내내 그 사람에게 떠올려질 유언의 말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성당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후배의 결혼식 동영상을 보게 되었죠. 영상 속 부부에게 전한 신부의 말이 기억이 남습니다. 부부란 한 글자로는 짝, 두 글자로는 하나, 세 글자로는 나란히, 네 글자로는 평생 친구, 그리고 열아홉자로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이 관계를 만듭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 나의 말이 상대를 향하기 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라고 말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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