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임팩트] 부의금 80%가 카톡···'관혼상제 민족'이 변했다

[코로나 임팩트] 부의금 80%가 카톡···'관혼상제 민족'이 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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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지구가 바이러스로 ‘연결’됐다. 인터넷 이후 가장 강력한 연결이다. 2020년은 코로나19다.  

코로나19로 현대인의 바쁜 일상이 멈춰 섰다. 급정거의 충격은 개인과 사회의 건강함을 시험했다. 만연한 ‘코로나 블루(우울증)’ 속에 몸과 마음의 회복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젠 관성을 넘은 삶이 새로이 보인다. 2021은 삶의 재발견이다.

세계는 이미 달라졌다. 체면을 벗은 관계, 강요된 희생을 넘은 돌봄, 취향을 존중하는 일상이 초연결 사회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다.

관계의 재발견 : 관계, 체면과 술잔을 벗다

‘관혼상제의 민족’이 변했다. 유교적 체면 문화 속 경조사 발걸음을 코로나가 멈춰 세웠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내비게이션 앱 ‘카카오T’에서 코로나 전(지난해 1월 1~20일 평균)과 후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코로나 1차 확산기인 지난해 2월 말 여가활동(레저·공원·숙박)과 경조사(예식장·장례식장) 이동은 각각 -41%, -43%로 반 토막 났다.

코로나 기세가 꺾인 5월 초와 10월 중순, 여가 이동은 코로나 전보다도 +95%, +41%로 늘었지만 경조사 이동은 -2%, -22%로 여전히 감소 상태였다. 남의 행사 방문 대신 내 여가를 누리는 게 당연해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12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식사한 조문객은 빈소 당 평균 81명으로, 전년 동기 평균(251명)의 3분의 1로 줄었다.

‘모바일 마음 송금’도 엄연한 예(禮)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에서 결혼한 직장인 나 모(33)씨는 축의금 봉투의 80%를 카카오톡으로 받았다. 나 씨는 “주는 사람들은 약간 민망해 했지만, 이렇게 챙겨주니 신기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송금에 결혼 축하 문구를 넣는 ‘축의금 봉투’ 이용량은 코로나 이전(1월)보다 8월에 100%, 12월에는 353% 늘었다.

코로나 꺾여도 ‘경조사 이동’ 회복 안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코로나 꺾여도 ‘경조사 이동’ 회복 안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술 마셔야 진심 나온다’는 신화는 깨졌다. 재택근무가 길어지자 기업들은 새로운 조직 문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한국·미국·유럽·중국의 1만8500명 사무·기술직 전 직원에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 협업 솔루션으로 일하고 회의는 영상으로 한다. 그런데 문서 사용을 도리어 줄였다. 보고서 분량은 2장 이내로 제한하고, 통화·e메일로 소통했다. 전문 용어를 학습시킨 인공지능(AI) 실시간 통번역 기능을 사내 메신저와 e메일에 붙였다. 비대면에서 오는 차가움과 오해를 줄이고, 직원 간 소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이 유지하던 여러 네트워크를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줄여봤는데, 업무 성과에 필수적이지 않은 네트워크가 뭔지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인맥 유지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줄고, 사회 자본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돌봄의 재발견: 돌봄, 강요된 정성을 넘다

코로나19로 직장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돌봄대란과 삼시세끼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을 겪으며, 돌봄·가사 노동의 가치가 재발견됐다. ‘직접 봐야 산다’, ‘남의 손에 못 맡긴다’는 저신뢰·저품질 때문에 정성과 희생으로 해결하던 영역이다. 이를 바꾼 건 모바일 기술이다.

서울 아현동에 사는 주부 신 모(69) 씨는 코로나19 이후 장바구니에서 해방됐다. 딸이 깔아준 앱으로 저녁에 식재료와 먹거리를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놓여있다. 그전엔 주 1회 운전해 북적이는 대형마트에서 무겁게 사다 날랐었다.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상 중·노년층의 ‘샛별 배송’ 이용이 급증했다. 무거운 장바구니가 부담스러운 연령대다. 지난해 신규 가입자가 전년 대비 109% 증가했는데 50대 이상이 142%, 60대 이상은 170% 늘었다. 마켓컬리 전체 회원 중 50대 이상 비중은 20%에 달한다.

워킹맘인 김희정 째깍악어 대표는 지난달 내내 재택근무를 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13세 딸은 줌을 통해 온라인 키즈클래스를 들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개포동 김 대표의 집 서재에서 엄마는 재택근무를, 딸은 실시간 화상으로 째깍악어 선생님에게 코딩을 배우며 따라하고 있다. 사진=김경록 기자

워킹맘인 김희정 째깍악어 대표는 지난달 내내 재택근무를 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13세 딸은 줌을 통해 온라인 키즈클래스를 들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개포동 김 대표의 집 서재에서 엄마는 재택근무를, 딸은 실시간 화상으로 째깍악어 선생님에게 코딩을 배우며 따라하고 있다. 사진=김경록 기자

자녀 돌봄도 가정의 문턱을 넘었다. SK는 지난해 8월부터 아이돌봄 스타트업 째깍악어에 직원 자녀를 위한 온라인 돌봄 프로그램을 맡겼다. 직원 자녀가 집에서 실시간 화상으로 돌봄 선생님과 미술·요리·음악·외국어 활동을 한다. 지금까지 500여 아동이 참가했고, 부모(직원)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7점. 반응이 좋자 째깍악어는 이를 일반 소비자에 확대한 ‘째깍박스’를 시작했다.

집의 재발견 : 일상, 취향의 옷을 입다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넥스트 '도시인'). 1992년 나온 이 노랫말은 30년간 참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집은 일·휴식·문화의 복합 공간으로 변했다. ‘사는(live) 곳’ 내부가 중요해졌다.

이는 소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2~6월 온라인 쇼핑 쓱닷컴에서는 디퓨저·향초 같은 실내용품이 전년 동기 대비 2.3배나 팔렸다. 고가인 매트리스 판매량도 24.3% 증가했다. 코로나가 2, 3차 퍼진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는 아예 집안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페인트·시트지·공구 같은 셀프 인테리어 용품 구매량은 전년 동기의 5.4배로 급증했다. 옷도 행사용보다는 집에서 입기 편한 걸 많이 샀다. 지난해 2~6월 홈웨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 늘어, 정장 판매량 증가율(남성 30.3%, 여성 27.5%)보다 배 이상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소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0년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소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숙박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특급호텔이 아니라면 숙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소와의 거리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집 전체를 빌려 공간 자체를 경험하는 숙박이 부상했다. 관련 숙박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스테이폴리오는 코로나19에도 지난해 입점 숙박업소가 20% 늘었다. 이 회사 백경훈 실장은 “재택근무 영향인지 공간 내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1박 평균가가 35만원으로 높은데도 지난해 연박 비율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로컬의 재발견 : 글로벌, 가상을 잇다

글로벌 경제, 글로벌 트렌드… ‘글로벌’은 만능 접두어였다. 코로나19는 글로벌 강박 대신, 우리 동네를 다시 보게 했다. 사무실 출퇴근이 줄어드니 집 근처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뉴욕 증시를 앞마당으로 여기는 개인 투자자는 늘었다.

글로벌 IT 기업 직원 박 모(41) 씨는 지난해 내내 서울 청담동 집에서 원격근무를 했다. 미국 현지 시각에 맞춰 매일 오후 일어났고, 집 근처 가게를 찾는 날이 늘었다. 한편으로 미국 증시에 관심이 높아져 테슬라 등 주식을 모바일 앱으로 샀다. 박 씨는 “서울에 있어도 국내 증권사 앱과 해외 매체로 실시간 정보를 얻으니 국내 주식 투자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딜로이트가 지난달 발간한 ‘2021 상업 부동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산업계 리더의 23%는 ‘내년 임대료 수입이 2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무실·호텔·유통업 부동산은 부정적으로, 의료나 데이터센터용 부동산은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를 “도시에서 거주지 생활권으로 중심이 옮겨오는 '로컬택트'(local+contact) 시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도시의 고밀도는 더는 경쟁력이 아니다. 모 교수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끝났다”며 “이제는 동네에 주택, 일자리, 상업시설이 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창한 산업단지가 아닌, 동네의 특색있는 거리와 상점에 소상공인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 그러려면 동네를 ‘복지 정책’ 대상으로만 보던 시각을 바꿔, 읍면동 단위의 미세한 맞춤형 상권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서현·하선영 기자 shshim@joongang.co.kr
영상기획=정종훈·김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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