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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은 공산주의자" 유죄, "文이 공산화했다" 무죄…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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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3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1심 무죄 석방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3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1심 무죄 석방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공산화를 시도했다”(전광훈 목사)
“문재인 후보도 공산주의자입니다”(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문재인’과 ‘공산주의’가 주요 키워드인 두 발언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의 법적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허선아)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뜻의 발언을 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넉 달 전인 지난 8월.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인 형사9부(재판장 최한돈)는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어떤 점이 두 발언의 유·무죄를 엇갈리게 한 걸까.

‘사실 적시’인가 ‘의견 표명’인가

형사재판에서 명예훼손죄가 인정되려면 문제가 된 발언이 사실(事實)을 적시한 것이어야 한다. 이때의 사실은 의견 표명이나 평가, 가치판단 등과 대치되는 개념이다. 또 이 사실은 허위의 사실일 수도, 진실인 사실일 수도 있다. 판례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증거로 입증이 가능한지, 발언의 문맥이나 사회적 상황은 어떤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전 목사 재판부는 전 목사의 발언이 사실을 적시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전광훈 목사 발언(2019년 12월 28일 ‘문재인퇴진 범국민대회’ 발언)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 문재인 주사파 일당이 지금 와서 김일성을 선택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원래 좌파 종북 빨갱이들은 거짓말의 선수들입니다. 김일성도 거짓말, 박헌영도 거짓말, 문재인도 거짓말쟁이입니다. ①서독의 간첩 윤이상에게 부인을 보내서 참배를 하게 하는가 하면, ②공산주의자 조국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조국이가 쓴 논문을 보면 대한민국을 반드시 공산화 시킨다고 쓰여 있습니다

먼저 전 목사 재판부는 ‘공산주의’라는 개념에 포함된 다양한 의미가 있음을 언급했다. ‘공산주의’라는 표현이 우리 사회에 정치적 이념으로서 ‘단일한 의미의 확정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전 목사가 “공산화”의 근거로 제시한 ①, ②의 발언에서 곧바로 “대통령이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즉 전 목사는 나름의 근거를 대며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나 태도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것이지 증거로 입증 가능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현직 대통령이자 정치인인 공인의 정치적 이념 검증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더욱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사실에 근거한 왜곡…표현의 자유로 보호 안 돼

 허위사실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허위사실로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을 심리한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이후, 야당 유력 정치인이던 시점에 나왔다.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발언 (2013년 1월 4일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인사말 발언)

“제가 1982년도 부림사건 수사 검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걸 변호를 해서 (…) 굉장히 의미를 두는 사건입니다. ①그 부림사건에 문재인 후보도 변호사였습니다
②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 피의자가 저한테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겁니다’그렇게 말했습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거 저는 아주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부산인맥이라는 사람들이 ③전부 부림 사건 관련 인맥입니다. 그러면 전부 공산주의 활동,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문재인 후보도 이거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고 전 이사장 재판부는 “①발언은 증거와 배치되는 허위의 사실에 해당하고 ②는 피고인의 경험으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라 판단했다. 고 전 이사장이 발언의 핵심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논리를 펴기 위한 입증 방법으로 객관적 사실을 적시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덧붙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약간의 과장된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사실을 근거로 논리 비약으로 나아갔고, 고 전 이사장도 이런 허위성을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발언 전반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북한의 체제 또는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꾀하는 과격한 공산주의자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고 판결에 썼다.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국가에서 과격한 공산주의적 활동가는 처벌의 대상이 되고, 반사회세력으로 지목돼 선량한 사회 구성원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도 했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유력 정치인인 피해자에게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 발언이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기다리는 엇갈린 “공산주의자” 판결들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재판부의 엇갈린 판결은 이뿐만은 아니다. 고 전 이사장 1심 판결만 해도 같은 발언을 무죄로 판결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김경진 판사는 “어느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그 개념 속성상 그의 생각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며 “평가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이어서 증거에 의해 증명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한국전쟁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와 전후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서로 같을 수 없듯, 피고인과 문재인의 다른 경력과 활동을 고려하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을 사실의 적시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항소심과는 완전히 다른 판결이다.

고 전 이사장 측은 상고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또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이 문재인 대통령 후보자에 대해 "공산주의자"라고 칭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유포했다는 명예훼손 사건도 대법원이 살펴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낸 민사소송도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민사에서 1심과 2심은 '공산주의자' 발언의 명예훼손을 인정해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피해자가 현직 대통령인지 아닌지, 문제가 된 발언의 앞뒤 맥락에 따라 유·무죄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고 전 이사장은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고, 전 목사는 일반인으로 두 사건은 피고인의 지위가 다소 달랐다. 피해자인 문 대통령도 고 전 이사장 사건에서는 '정치인'이었지만 전 목사 사건에서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보다 보다 광범위한 비판이 가능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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