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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 트럼프 배신해야 야망 이룬다, 펜스에 닥친 '선택의 순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지난 2017년 방한 당시 사진이다. [사진공동취재단]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지난 2017년 방한 당시 사진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충신으로 남을 것인가 배신자로 돌아설 것인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 앞에 놓인 새해 첫 주의 난제다. 선택의 순간은 6일(현지시간) 찾아온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형식적 마무리 절차 중 하나인 상원의 선거인단 결과 인증 및 선포 절차에서다. 상원의장이 이 역할을 하는데 미국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당연직으로 역임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 “1월 6일을 기대한다”는 요지로 트윗을 올리며 펜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ㆍCNN 등 반(反) 트럼프 진영 매체들은 “펜스가 6일 옳은 선택을 할 것인가”(NYT 지난달 29일자 칼럼) 등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선택은 펜스의 몫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함께한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연합뉴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함께한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연합뉴스]

펜스에게 트럼프는 은인이다. 트럼프로부터 부통령 낙점을 받기 전까지 펜스는 우직하지만, 존재감은 별로 없는 공화당 정치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통령으로 있으면서 단번에 공화당의 차기 주자군으로 도약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곁을 묵묵히 지키며 무게추 역할을 4년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제 2024년 대선 출마까지 저울질해 볼 만한 입장이 됐다. NYT의 정치부 기자로서 트럼프와 그 측근을 다룬 기사를 써서 2018년 퓰리처상을 받은 매기 해버만 기자는 지난해 8월 펜스에 대해 “트럼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2024년을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해 워싱턴 하원의원 신년 국정연설.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이 환히 웃으며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대조된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해 워싱턴 하원의원 신년 국정연설.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이 환히 웃으며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대조된다. AFP=연합뉴스

딜레마는 2024년을 위한 야망을 키우려면 은인 트럼프를 배신해야 한다는 데 있다. 펜스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맞지 않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자청해 맞으면서 조금씩 차별화 노선을 타고 있다.

친(親) 트럼프 진영에선 이미 펜스에 대한 반발이 감지된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달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중에서 대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역정을 냈고, 이 중엔 펜스도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측 베테랑 하원의원인 루이 고머트는 지난달 27일 “펜스 부통령에게 (1월 6일) 대선 결과(조 바이든 승리)를 뒤집을 권한을 줘야 한다”며 자신의 지역구인 텍사스주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법원이 이 소송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법리적으로는 크지 않다는 게 미국 여론 분위기다. 그러나 펜스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공화당 내에서 그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패배하긴 했으나 740만 표(약 46.8%) 이상을 거머쥐는 득표 파워를 증명했다. 뼛속까지 공화당인 펜스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24년 대선 경선 레이스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벌써부터 경쟁자들이 엿보인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과 펜스 부통령. 2024년 대선이란 목표를 둔 경쟁자이기도 하다. [신화=연합뉴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과 펜스 부통령. 2024년 대선이란 목표를 둔 경쟁자이기도 하다. [신화=연합뉴스]

펜스에 대한 공화당 진영의 의구심은 이미 2019년 구체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책 『경고(A Warning)』의 익명 저자가 펜스 아니냐는 보도까지 나오면서다. 이 책은 현직 트럼프 행정부 관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디테일로 가득했고 당시 다수 매체는 펜스를 저자로 지목했다. 펜스는 이를 강력 부인했고 결국 저자는 마일스 테일러 전 국토안보부 장관 비서실장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펜스로선 지목받았다는 자체가 일종의 주홍글씨가 된 상황이다.

마이크 펜스(Mike Pence) 미국 부통령 집무실에 놓여 있는 사진.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가 6.25 전쟁에 참전해, 1953년 4월 육군 훈장인 청동성장을 받는 장면이다. [펜스 부통령 트위터]

마이크 펜스(Mike Pence) 미국 부통령 집무실에 놓여 있는 사진.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가 6.25 전쟁에 참전해, 1953년 4월 육군 훈장인 청동성장을 받는 장면이다. [펜스 부통령 트위터]

반면 펜스를 상징하는 단어는 우직함이다. 기독교인인 그는 부인이 없으면 다른 여성과는 술은 물론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는 ‘펜스 룰’의 저작권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는 6ㆍ25 참전용사였고, 전공(戰功)을 인정받아 동성훈장을 받았다. 펜스의 부통령 집무실엔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이 걸려있다. 펜스 부통령은 2017년 방한하면서 “비행기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런 펜스는 대선 불복을 요구하는 트럼프와 2024년 사이에서 어떤 속내를 갖고 있을까. 이래저래 2021년은 시작부터 펜스에게 도전의 시간이 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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