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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일방주의와 암울한 핵무장 북한…혼돈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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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2021년 국제 외교안보 정세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혼돈의 시대다. 매년 새해가 되면 희망이 부풀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 바라는 게 인간지사다. 그러나 2021년 외교·안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일방주의와 경쟁, 러시아의 틈바구니 전략, 핵무기는 가졌지만 민생이 어려워 불안한 북한의 도발 등이다. 확산세가 그치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은 국제사회를 각자도생으로 만들었다. 코로나 백신은 부유한 나라가 입도선매했다. 우리 정부는 딴전 피우다 국민 질타를 받은 뒤에야 백신 확보에 나섰다. 아프리카 등의 저소득 국가엔 백신이 그림의 떡이다. 미·중이 싸우는 통에 국제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미 대통령에 조 바이든이 당선했지만, 훼손된 자유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할지 의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새해 안보정세를 분석한 국립외교원, 한국국방연구원(KIDA), 세종연구소, 아산정책연구원 전문가의 일관된 의견이다.

미·중 일방주의가 줄서기 강요 #코로나19로 자국중심주의 확산 #북, 대남 이어 대미 도발 가능성 #“북핵, 강 건너 아니라 발등의 불”

코로나 팬데믹이 낳은 위기와 불안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기존의 세계 질서가 붕괴하는 모습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로 규범과 질서를 만들고 지켜왔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동안의 미국 지위와 역할을 포기하고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일방주의적 행보를 보였다. 시진핑의 중국은 한술 더 떴다. 모든 주변국에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다. 러시아와 프랑스까지도 철저한 국익 계산에 따라 이합집산의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강대국의 일방주의는 국제사회를 ‘혼돈’과 ‘불안’ 속으로 끌어넣고, 우리 안보엔 부담이다.(아산정책연 한승주 이사장) 냉전 이후 이념 문제가 종식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최종 승리를 거뒀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그 의미가 이미 퇴색하고 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국제 공급체계를 흔들었다. 실업자 폭증, 소득 감소, 소비 둔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세종연 이대우 외교전략실장) 이런 현상을 단국대 조한승 교수(정치외교)는 ‘멀티플 팬데믹’이라 했다. 자국중심주의 확산, 글로벌 거버넌스(국제제도와 기구)의 재정난, 국익을 계산한 중국의 국제기구 진출과 제도 훼손이다. 특히 자유주의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 일부 지도자의 정치를 활용한 권력 기반 확대나, 한국에서 대북전단금지법과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그 사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패 국가(파산)가 속출하면 내전에 이어 지역분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신냉전과 양극화

2021년 시기별 북한 도발 유형

2021년 시기별 북한 도발 유형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미 불이 댕겨졌다.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은 자국의 이익을 ‘가치’로 포장해 다른 나라에 줄서기를 압박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중국은 주권과 사회적 안정을 내세운다. 서로 옳고 정의롭다고 우기며 독단에 빠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을 주창한다. 중국은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의 규범이나 법을 무시하고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이 새로운 ‘룰’을 만든단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롯데를 보복하고, 한한령(寒韓令)을 내렸다. 중국은 최근 호주에도 보복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만든 쿼드(QUAD·4개국 협력)에 호주가 참여했다는 이유다.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입 중단, 보리와 목화에 관세(40∼80%) 부과, 와인 조사 등으로 압박했다.

중국의 해양 영토에 대한 과욕은 동·남중국해를 분쟁수역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남중국해의 스카보르 숄을 점령했다. 남중국해가 2000년 전 진나라 때 영해였다는 근거 없는 명분으로 난사군도의 무인도를 차지했다. 그런 뒤 섬들을 메워 활주로 등 군사시설을 건설했다. 중국에 직격탄을 맞은 필리핀과 베트남은 벼르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은 자못 심각하다. 중국은 동·남중국해를 사실상 내해로 만들기 위해 반접근거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 해군이 중국 근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진입하면 미사일로 격파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엔 중국 항공모함 산둥함 전단이 대만 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해상기동훈련을 했다. 같은 시기에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군용기 19대를 동원해 우리 동해를 휘젓고 다녔다. 중국·러시아·북한의 반자유주의 진영이 동북아로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도 중국의 횡포를 두고만 볼 수 없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구역에 스텔스형 로봇함정으로 구성된 신형함대(유령함대)를 2025년 배치할 계획이다. 미 국방부는 태평양지역에 배치된 미 육군을 전면 개편할 생각이다.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는 게 목표다. 여기엔 주한미군도 포함된다. 미·중 양국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우주기술 등 핵심기술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은 호주·일본·인도와 연대한 쿼드로 중국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쿼드 참여를 요청하지만, 정부는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보다 명분을 갖춘 바이든의 요청에 한국이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국립외교원 김태한 교수)

핵은 완성하지만, 위태로운 북한

북한의 2020년 경제 성적표는 처참하다. 북한은 수년간 지속해온 대북제재에 이어 지난해엔 코로나19와 수해·태풍으로 복합 위기를 맞았다. 2017년부터 광물 등 주력 상품 수출이 차단되면서 무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북한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감소했다. 최근 북한에선 밀가루가 식용유 등 생필품이 사라졌다고 한다.(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 달러가 없어 수입을 못해서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북한의 중국 수출은 260만 달러다.(VOA) 이 가운데 북·중 합작 수력발전소의 전기 수출을 제외하면 실제 수출액은 화장품과 비누 등 112만 달러(12억원)에 불과하다. 북한이 지난해 1월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중국 국경을 폐쇄했지만, 실제론 위태로운 외환보유고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북·미 핵 협상 장기화에 대비하려면 중국 물품 수입을 차단해 달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 협상은 올 상반기에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바이든 신 행정부가 초반에는 코로나19와 대선 후유증 해소, 중국 대응전략 수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구나 바이든 측은 북한에 부정적이다. 북·미 협상이 후반기에 이뤄져도 북한이 챙길 수 있는 실질적 혜택은 내년에야 가능하다. 북·미가 합의해도 검증해야 대북제재가 일부나마 풀리기 때문이다. 경제가 절벽인 북한으로선 견딜 수 없다.

북, 국면 타개위해 도발 가능성 커

북한은 올 상반기엔 대남 도발을, 후반기엔 대미 도발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아산정책연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상반기 도발은 한·미 연합훈련(3월 초)과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존엄’(김정은과 북한 체제)을 훼손할 경우다.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도발 형태는 다양하다. 대남 도발로는 연합훈련을 전후해 신형 단거리 미사일 발사나 실전 배치, 지난해 6월 북한군 총참모부가 발표했다가 보류한 4가지 군사 조치다.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연대급 부대 배치, 비무장지대 GP 환원, 전방경계근무 격상 등이다. 북한은 지난해 해수부 공무원 총격 살해와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각종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서처럼 한국에 대한 도발엔 부담이 적다. 정부가 저자세여서다. 국방연구원 등에 따르면 대미 도발은 2018년 이후 중단해온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핵무기 모의훈련 등이 예상된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모의훈련 땐 미국과 중국의 항모전단이 한반도 근해에 몰려올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런 일시적인 위기 국면으로 위상을 높이고, 미국의 관심을 끈 뒤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새해 안보가 혼돈의 시기라고 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우선 “북핵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아산정책연 최강 원장) 한국은 40∼60발의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위협에 본격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북한은 머지않아 2격 능력을 갖추는 100발의 핵무기를 가진다. 미국이 지난해 차기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에 참수작전 등 특수전 전문가를 지명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기 전에 수뇌부부터 제거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깔렸지 않았을까. 더구나 북한 경제는 크게 취약해졌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서 북한의 도발이 더 우려된다. 혼돈의 시대에 군과 정부는 원칙에 강해야 한다. 지난해처럼 북한의 도발에 눈감아선 안 된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어느 때보다 대비에 철저해야 할 때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