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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장애 넘어…'비걸' 김예리 "내 인생 한계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브레이크 댄스 ‘비걸(B-girl)’ 김예리(20)가 시그니처 무브 ‘헤일로-탭밀(halo-tap mill)’을 선보였다. 저공 무브로, 바닥에 머리를 대고, 몸을 공중에 던져 한 바퀴 도는 연결 동작이다. 걸그룹 ‘에프엑스’ 엠버를 닮은 그는 은색과 파란색 투 톤의 짧은 헤어스타일이다. 닉네임 ‘YELL’(옐)은 그의 이름(예리)을 빨리 말한 거다.

올림픽 새 종목 브레이킹 기대주 #남성 연상 비보잉 대신 브레이킹 #2018년 유스올림픽 동메달 획득 #청각 장애 극복하고 세계 정상급 #

2021년 새해를 몇 시간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김예리를 만났다. 그는 “자다 일어나서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머리를 쓰는 동작이 있어 중학생 때부터 머리카락이 짧았다. 외국에는 반삭발한 비걸도 있다”고 소개했다.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브레이크 댄스는 최근 2024년 파리 여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김예리를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 동메달리스트다. 브레이크 댄스가 전 세계 젊은이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야구 대신 브레이크 댄스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김예리는 “(유스올림픽에서 브레이크댄스 인기는) 다른 종목을 초월했다. 관중이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즐거워했다. 스테이지 옆까지 최소 1만명은 모인 것 같았다”며 당시 영상을 보여줬다.

현재 국내 비보이(남성)는 초보자를 포함하면 1만명, 쇼잉이 가능한 전문가는 300명 정도다. 비걸(여성)은 그보다 훨씬 적다. 김예리는 “20명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 여자부가 본격적으로 생겼다”고 말했다. 김예리는 지난해 10월 ‘레드불 BC one E배틀’에 참가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언택트 온라인 배틀’이었다. 예선과 32강은 개인 영상으로, 16강부터는 라이브 영상으로 두 명의 댄서가 대결했다. 김예리는 4강(공동 3위)에 들었다. ‘춤이 슬로모션 같다’, ‘유니크하고 춤선이 부드럽다’ 등 찬사가 쏟아졌다.

대회에 참가해 고난도 댄스를 펼치는 김예리. [사진 김예리]

대회에 참가해 고난도 댄스를 펼치는 김예리. [사진 김예리]

김예리는 학창 시절 한때 ‘왕따’를 당했다. 중학 1학년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보이그룹 ‘틴탑’의 ‘긴 생머리 그녀’ 댄스를 선보여 우승했다. 김예리는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춤이 (왕따) 탈출구가 됐다”고 고백했다.

중학 3학년 때 본격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시작했다. 그는 “비보이 공연을 보며 여성이 쉽게 할 수 없는, 남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동작을 터득하면 성취감이 생겼고,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처음에 부모님은 딸이 춤추는 걸 반대했다. 댄스학원 수강을 막자 놀이터에서 연습하는 딸을 보고 부모님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YGX’ 소속으로, 가수 송민호와도 무대에 올랐다.

종목 특성상 부상이 잦다. 지난해 ‘BC one 월드 파이널’ 참가를 위해 인도로 출국하기 전날, 연습 중 무릎을 다쳤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예선과 16강을 통과했다.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비걸 김예리는 브레이킹으로 장애와 차별을 극복했다. 그의 꿈은 3년 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또 하나, 그는 청각장애 4급이다. 초소형 보청기를 착용한다. 그는 “1, 2급은 보청기로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난 그래도 4급이다. 잘 때만 보청기를 빼는데, 내 목소리도 잘 안 들린다”고 설명했다. 사실 댄서에게 청각장애는 치명적 단점이다. 그는 “춤추는 도중 보청기가 떨어질 수 있어서 초소형 삽입형으로 바꿨다. 대회 도중 전자기타의 웽웽 소리만 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만의 비결이 있다. 음악이 안 들릴 때는 상대 동작을 보며 박자를 맞춘다. 혼자 속으로 ‘원, 투’를 반복하기도 한다.

김예리는 인터뷰 중에도 기자 입술 움직임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시종 씩씩했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길지 않았던 그간의 삶이 편견에 맞선 싸움이었다. 김예리는 “브레이크 댄스를 ‘비보잉’이라 부르듯,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여자들 사이에선 ‘비걸링’으로도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성 평등 차원에서 올림픽 종목 명칭은 ‘브레이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람들이 내 ‘장애’에 관심을 갖지만, 나는 ‘장애가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limitless(한계가 없다)’라고 적혀 있다.

파리올림픽은 3년 뒤에 열리지만, 올림픽으로 가는 길은 지금 당장부터다. 올림픽 '브레이킹'에는 남녀 개인전 1개씩, 총 2개의 금메달이 걸렸다. 여자는 아미, 아유미(이상 일본), 카스텟(러시아)이 세계 최강자 군이다. 김예리는 그들을 턱밑에서 추격한다. 그는 “부상만 없다면, 유스올림픽 동메달을 올림픽 금메달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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