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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햇빛에 닿으면 방귀 냄새…‘맥주 이취’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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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59)

멀쩡한 맥주에 굳이 잡내 나는 원료를 섞어서 마시는 유료 모임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명이 모이는 것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매우 활발하게 운영됐고, 나 역시 두어 번 참여한 적이 있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모임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일까?

맥주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 중 중요한 부분은 맥주 맛을 감별하는 능력이다. 마셔보고 어느 스타일의 맥주인지를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맥주에서 불쾌한 맛을 감지해내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 맛이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맥주를 양조할 때는 물론이고 다른 양조장의 맥주를 받아다가 판매할 때도 이런 능력은 필수적이다. 또 일반 소비자 입장일지라도 현명한 맥주 소비를 위해 필요하다.

맥주 전문가가 갖춰야 할 소양 중 중요한 부분은 맥주 맛을 감별하는 능력이다. 마셔보고 어느 스타일의 맥주인지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사진 황지혜]

맥주 전문가가 갖춰야 할 소양 중 중요한 부분은 맥주 맛을 감별하는 능력이다. 마셔보고 어느 스타일의 맥주인지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사진 황지혜]

잘못된 맥주를 골라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오프 플레이버(off flavor) 테이스팅’으로 불린다. ‘이취(異臭)’로 번역되는 오프 플레이버는 양조사가 맥주를 만들 때 의도하지 않은 불쾌한 맛과 향을 말한다. 재료 선별, 양조, 숙성, 보관, 유통 등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에 의해 오프 플레이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이취가 생성됐는지를 파악하면 이를 잡을 수 있다.

훈련을 위해서는 각종 원인으로 오프 플레이버가 생긴 맥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잘못 만들어진 맥주를 시중에서 한 번에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러 제조할 수밖에 없다.

먼저 ‘오프 플레이버 키트’라고 불리는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잘못 만들어진 맥주에서 날 수 있는 이취가 응축된 액체다. 오프 플레이버 키트는 미국의 맥주 교육기관 시서론이나 시벨 인스티튜트 등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포함해 다양한 제품이 있다. 대부분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해야 한다.

오프 플레이버 키트. [사진 cicerone]

오프 플레이버 키트. [사진 cicerone]

다음 스텝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맥주에 각각 정해진 양을 첨가하는 것이다. 이때 오프 플레이버 물질을 혼합할 맥주는 맥주 자체에서 나는 향과 맛이 적은 맥주가 좋다. 그래야 이취를 감지해내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페일 라거(카스, 하이트, 피츠 등)나 라이트 버전이 주로 쓰인다.

이제 오프 플레이버를 감지해내는 일만 남았다. 수많은 오프 플레이버가 있지만 초보자는 맥주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6가지 내외를 가지고 훈련한다. 디메틸설파이드(DMS)는 옥수수, 야채 삶은 물 같은 풍미가 나는 성분으로 끓임 과정이 충분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다. 디아세틸(Diacetyl)은 버터 향의 미끌미끌한 성분으로 건강하지 않은 효모에 의해 생성되거나 박테리아 등에 오염됐을 때 만들어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ed)는 청사과, 아세톤으로 표현되며 맥주 발효과정에서 효모가 충분하지 않아 발효 속도가 느릴 때나 숙성이 제대로 안 됐을 때 발생할 수 있다.

또 맥주가 오염됐을 때 대표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맛은 신맛(Acidic)으로 생맥주 관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맥주를 냉장 보관하지 않았을 때는 맥주의 지방산이 산화하면서 종이 맛이 날 수 있다. 또 햇빛이 닿아 성분이 변하면 맥주 안의 쓴맛이 스컹키로 표현되는 방귀 냄새로 변한다. 이런 이론을 공부한 후 테이스팅 모임에 참여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맥주에 워낙 작은 양이 투입돼 있기 때문에 감지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 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오프플레이버 훈련은 혼자서 하기는 어렵다. 오프 플레이버 키트는 기본 20만 원 이상인 데다 오래 보관되지도 않는다. 또 누군가 맥주에 타서 줘야 감별하는 훈련을 할 수가 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맛없는 맥주를 마시는’ 오프 플레이버 테이스팅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다.

맥주에 적정량을 섞어 서빙해줄 사람이 있다면 집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도 연습이 가능하다. 신맛은 식초로, 디아세틸의 버터향은 버터로 구현하고 아세트알데히드는 청사과향 사탕을 활용하는 식이다. DMS는 스위트콘 캔에 들어있는 액체를 사용하면 된다. 병맥주를 딴 다음에 따뜻한 곳에 두면 산화된 맥주의 맛을 만들 수 있다. 점점 맥주를 많이 섞으면서 어느 수준의 농도까지 감지할 수 있을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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