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립습니다…올해 하늘로 떠난 세계의 셀렙들

중앙일보

입력 2020.12.31 00:03

업데이트 2021.01.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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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20년, 우리 곁을 떠난 셀렙과 ★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 우리 곁을 떠난 셀렙과 ★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에도 어김없이 세계의 많은 유명인이 별이 됐다.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우리 곁을 떠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5인을 중심으로 부음을 전한다.

‘I Am Woman’ 페미니즘 전설 레디
프랑스 ‘샹송의 여왕’ 그레코
제퍼디 진행 ‘퀴즈쇼 제왕’ 트레벡

밀턴 글레이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밀턴 글레이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1929년생)=글레이저를 모를 순 있지만 이 로고를 모를 순 없다. ‘I♡NY.’ 글레이저는 1977년 뉴욕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이 로고를 스케치북에 그렸다고 한다. 글레이저는 생전 인터뷰에서 “당시엔 사람들이 ‘난 OO를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게 유행이었고, 그걸 적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글레이저는 자서전 『불찬성의 디자인』에서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시대의 소명을 인식하고 이를 행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 그게 좋은 디자이너”라고 적었다.

쥘리에트 그레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쥘리에트 그레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수 쥘리에트 그레코(1927년생)=프랑스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노래, ‘파리의 하늘 아래(Sous le Ciel de Paris).’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가장 많이 검색되는 버전은 역시 여성 샹송 가수 쥘리에트 그레코다. ‘샹송의 여왕’으로 불렸던 그레코가 숨졌을 때, 프랑스 퍼스트 레이디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는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레코는 항상 검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검은 새’라는 별명을 얻었다.

존 르 카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존 르 카레.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작가 존 르 카레(1931년생)=시작은 정보기관 요원이었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1959년 데뷔작 『죽음의 유혹』을 낸 후 1963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로 이름을 알린 뒤 1964년부터 전업 작가로 생활했다. 영국 정보기관 MI6에서 일하며 쌓은 디테일로 스파이 소설의 새 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헬렌 레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헬렌 레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수 헬렌 레디(1941년생)=인기 TV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2편에서 네명의 여주인공이 손을 잡고 부르는 노래가 있다. ‘나는 여자다(I Am Woman).’ 지난 9월 29일 사망한 여성 가수 헬렌 레디의 전설적 노래다. “나를 굽힐 순 있어도 부러뜨릴 순 없어”라는 가사로 유명한 이 노래는 19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주제가였다. 레디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에 대한 긍정적이고 힘찬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없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썼다”고 말했다.

알렉스 트레벡.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알렉스 트레벡.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TV 진행자 알렉스 트레벡(1940년생)=미국의 성인판 ‘장학퀴즈’에 해당하는 롱런 퀴즈쇼, ‘제퍼디!(Jeopardy!)’는 37년간 쇼를 진행해온 인물을 잃었다. 1984년부터 마이크를 잡아 온 알렉스 트레벡이 주인공. 트레벡은 특유의 차분함과 지적인 이미지로 ‘제퍼디!’의 간판 역할을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평생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아직도 성취는 멀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죽을 때조차 답을 구하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숀 코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숀 코너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비 브라이언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비 브라이언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엔니오 모리꼬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엔니오 모리꼬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디에고 마라도나

디에고 마라도나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미국 여성 최초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년생), ‘영원한 007’ 숀 코너리(1930년생), ‘축구 황제’ 디에고 마라도나(1960년생), ‘농구 코트의 풍운아’ 코비 브라이언트(1978년생),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1928년생) 등도 올해 우리 곁을 떠났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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