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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유해동물로 찍힌 고라니 알고보니 국제적 보호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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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신남식의 야생동물 세상보기(25) 

한국은 유라시아의 큰 대륙에 있으나 야생동물 중 포유류는 125종으로 종 다양성이 낮은 편이다.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야생동물의 이동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는 것에 원인을 찾기도 한다. 또한 한반도는 DMZ 철책이 남북한의 동물이동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고립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인 동물 중 가장 많이 서식하는 종이 있다. 국내에서는 유해 동물로 천대받고 있는 고라니가 바로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고라니(Water deer)는 사슴과 고라니아과에 속하는 단일종으로 한국고라니(Hydropotes inermis argyropus)와 중국고라니(Hydropotes inermis inermis)의 두 아종이 있다. 중국은 동북부와 동부지역의 일부에 한정되고 한국은 제주도와 도서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영국은 1870년대 중국고라니가 처음 도입되었고 1930년 전후 추가로 도입되어 현재는 보호구역에 1000마리 정도가 있다. 갈대밭이나 큰 풀이 있는 숲, 낮은 산림지역. 농경지가 주 생활터전이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며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많다. 영문명과 학명에 물(water, hydropotes)이란 뜻이 있듯이 수변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한다.

고라니는 갈대밭이나 큰 풀이 있는 숲, 낮은 산림지역. 농경지가 주 생활터전이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며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많다. [사진 William Warby on Wikimedia Commons]

고라니는 갈대밭이나 큰 풀이 있는 숲, 낮은 산림지역. 농경지가 주 생활터전이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며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많다. [사진 William Warby on Wikimedia Commons]

고라니는 몸길이 75~100㎝, 꼬리 길이 5~8㎝, 어깨높이 45~65㎝, 체중 9~15㎏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 체형이 노루와 비슷해 혼동하기도 하지만 몇 가지만 알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노루 수컷은 뿔이 나지만 고라니 수컷은 뿔이 없다. 노루는 송곳니가 없으나 고라니 수컷의 위턱에는 5~10㎝ 정도의 긴 송곳니가 있다. 노루의 엉덩이 부분은 털이 흰색이나 고라니는 흰털이 거의 없다.

짝짓기 시기를 제외하면 단독생활을 하고 수컷은 자기만의 영역을 가진다. 오줌과 분변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땅을 파 발가락 사이에 있는 분비샘의 냄새를 남긴다. 나무에는 얼굴을 비벼 눈 밑에 있는 분비샘의 냄새를 묻히는 것으로 영역을 표시한다. 수컷끼리 영역 다툼과 짝짓기 시기의 싸움은 치열하다. 송곳니로 상대의 얼굴 목 어깨 등에 상처를 입혀 때로는 치명상이 되기도 한다. 암컷은 평상시에 다른 암컷이 영역에서 먹이를 찾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허락한다. 출산 전후나 새끼를 양육할 때는 다른 암컷을 자신의 영역에서 몰아낸다.

의사소통을 위해 몇 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는 경고음으로 특이한 짖는 소리를 낸다. 짝짓기 시기에는 수컷이 어금니를 부딪쳐 찰깍하는 소리를 내고 암컷을 쫓아다닐 때는 약한 휘파람 소리를 낸다. 어미가 새끼를 부를 때는 부드럽게 찍찍 소리를 내며 심하게 다쳤거나 고통을 받을 때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짝짓기 시기는 11~12월이며 170~210일의 임신 기간을 거쳐 5~6월에 출산한다. 한배 새끼는 보통 2~4마리이나 7마리까지 낳기도 한다. 갓 난 새끼는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양쪽에 흰 반점이 줄지어 있으며 3개월이 되면 없어진다. 새끼들은 태어난 지역에서 함께 지내지만, 곧바로 혼자의 생활을 위해 각자의 길을 떠난다. 성 성숙은 빨라 암컷이 7~8개월, 수컷이 5~6개월로 1년이 되기 전에 번식에 참여할 수 있다. 수명은 10~12년이다.

고라니는 한국의 생태계에서 멧돼지와 함께 가장 번성하고 있는 동물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개체 수는 약 70만 마리 정도로 추산되며 전 세계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호랑이, 표범, 늑대와 같은 포식동물이 사라진 것이 개체 수 증가 이유다. 담비, 삵, 수리부엉이, 검독수리 등이 고라니를 사냥하지만, 이들의 수가 많지 않고 새끼 위주로 잡아먹기 때문에 고라니의 개체 수에 영향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고라니의 개체 수가 많아져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있다. 반면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Red list)에는 멸종위기카테고리에 ‘취약(Vulnerable)’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사자, 표범, 치타, 아프리카코끼리, 기린 등과 같은 등급이 된다.

고라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은 생태계의 큰 축이다. 하나의 야생동물종이 급격하게 감소한다면 이 종과 연관된 다른 생물 종과의 안정적인 연결고리에 이상이 생기고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고라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은 생태계의 큰 축이다. 하나의 야생동물종이 급격하게 감소한다면 이 종과 연관된 다른 생물 종과의 안정적인 연결고리에 이상이 생기고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한국에 고라니의 개체 수가 많다고 하지만 지속해서 유지가 가능할 것인지 살펴보면 상황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 야생 동물로 민원이 있으면 언제든지 포획할 수 있다. 유해동물 구제와 수렵으로 연간 약 11만 마리가 포획된다. 도로에서는 이동 중에 차량과 충돌로 죽는 로드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야생동물 찻길사고의 60%가 고라니며 연간 1만 마리 정도가 로드킬로 없어진다. 여기에 집계가 안 된 부분과 부상과 조난, 밀렵으로 죽는 수를 더하면 연간 15만 마리 이상의 고라니가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농작물 피해로 인한 유해 야생동물 구제는 해마다 증가하고 도로의 건설과 함께 로드킬도 증가할 것으로 고라니의 장래가 밝지만은 않다.

고라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은 생태계의 큰 축이다. 하나의 야생동물종이 급격하게 감소한다면 이 종과 연관된 다른 생물 종과의 안정적인 연결고리에 이상이 생기고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생물 종의 분포와 이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새로 유입되거나 신종 전염병은 야생동물에 치명적일 수 있고 개체 수의 급격한 감소를 일으킬 수 있다.

고라니의 개체 수가 많다 보니 농작물 피해, 포획과 수렵, 로드킬에 국한된 대책과 연구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유해동물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공존할 수 있도록 생태환경을 만드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과의 공존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이미 사라진 동물과 같이 한순간에 멸종위기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야생동물은 그 수가 많거나 적거나 후세에 물려줘야 하는 소중한 자연유산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생각난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명예교수·㈜ 이레본 기술고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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