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낙태 합법화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29일(현지시간) 임신 1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표결은 이날 밤늦게 또는 30일 오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발의한 법안은 지난 11일 이미 하원을 통과했다.
가톨릭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낙태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에만 낙태가 허용된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음성 낙태 시술에 의존한다. 아르헨티나 정부에 따르면 해마다 37만~52만 건의 불법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1983년 이후 3000명의 여성이 음성 낙태 시술을 받다 목숨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원 72석 중 여당 연합이 41석을 차지하고 있으나 표결 결과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여당 의원 중에서도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임신 초기 낙태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가로막힌 바 있다.
법안 처리를 앞두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은 시위대에 점령됐다.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시위대의 초록색 깃발과 반대 시위대의 푸른색 깃발이 번갈아 광장을 수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9일 트위터에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버려진 이들은 신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서 버려진 채 태어났다"며 "그는 우리가 약함을 부드러움으로 맞을 수 있게끔 어린아이처럼 연약하게 세상에 왔다"고 썼다. 낙태 합법화 반대를 독려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아르헨티나에서 낙태가 합법화하면 대부분 가톨릭 국가인 중남미에선 쿠바, 우루과이, 가이아나에 이어 네 번째가 된다. 큰 나라 중에선 처음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내년 1월 1일부터 낙태죄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법 개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67년 만에 이뤄지는 낙태죄 폐지가 여야 정쟁 탓에 입법 공백으로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전면 폐지에 초점을 맞췄으나, 정부 안은 주(週) 수에 따른 조건을 걸었다. 임신 14주까지는 무조건 처벌하지 않고, 15~24주는 사유에 따라 허용하도록 했다. 국회에서도 다수의 개정안이 나와 있다.
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