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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헤지펀드 "삼성에 밀린 반도체 생산 멈춰라"…인텔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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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인텔 로고. [중앙포토]

삼성전자와 인텔 로고. [중앙포토]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과 함께 한발 앞선 기술로 컴퓨터 시장을 주름잡았던 인텔이 내·외부로부터 위기에 몰린 양상이다. 애플이 지난달 자체 설계한 칩 'M1'을 탑재한 PC '맥' 신제품을 출시해 자존심을 구긴데 이어 이번엔 행동주의 펀드(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설계에만 집중해라” 헤지펀드 서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계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는 인텔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반도체 설계와 양산을 모두 할 것인지를 포함해 회사를 반등시킬 전략적 대안을 모색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의 종합반도체업체(IDM) 지위를 포기하고, 경쟁 업체인 퀄컴이나 AMD처럼 반도체 설계에만 역량을 집중하라는 제언이다. 서드포인트는 최근 인텔 주식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어치를 확보한 상태다.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를 ‘자체설계, 자체생산’했던 인텔은 최근 경쟁자 AMD에 기술력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AMD가 CPU 설계에만 집중하면서 위탁생산(파운드리) 전문업체인 대만의 TSMC에 대량 양산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주로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에서 CPU를 생산하는 반면, AMD의 최신 CPU ‘라이젠’은 TSMC의 7나노 공정을 통해 양산하고 있다.

이번 서한에서 서드포인트는 “인텔은 한때 혁신적인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였지만, 지금은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등 동아시아 경쟁 업체들과 현저한 기술 격차를 보인다”며 “인텔이 즉각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첨단 반도체 공급을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동아시아 기업에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인텔의 최신 미세공정은 10나노지만, TSMC와 삼성전자는 현재 5나노 공정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미세공정의 수준이 높을수록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의 전력 소모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발열량도 줄어든다.

삼성도 인텔처럼 공격받을 가능성

인텔이 자체 생산을 포기할 경우 종합반도체 업체는 사실상 삼성전자만 남게 된다. 밥 스완 인텔 CEO는 최근 “내년 초까지 반도체 생산을 외주로 돌릴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다만, 삼성도 인텔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현재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양산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자원의 집중 측면에선 불리한 까닭이다. 퀄컴이나 애플 같은 고객사 입장에선 자신들의 설계 도면이 유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삼성이 현재 뒤쫓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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