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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명이 카트 게임했다"···2030의 힙한 모임 '랜선 송년회'

중앙일보

입력

“온라인 송년회에서 빔프로젝터 경품에 당첨됐어요. 상품은 해외에서 배송 중이에요.”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0)씨는 최근 색다른 회사 송년회를 경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송년회를 치른 것. 오후 5시에 시작된 송년회에 150여 명의 직원이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 화상으로 참석했다. 컴퓨터 화면 속에선 송년회 사회자가 지난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집에 있는 팀장 몇 명의 얼굴이 화면 한 쪽에 보였다.

고가의 경품에도 당첨돼 ‘가성비’가 더 좋았다. 김씨는 “회사 송년회에선 매년 제비뽑기로 상품 추첨 시간을 갖는데 이번에는 사내개발자가 제비뽑기 프로그램 페이지를 개발해 진행했다”며 기뻐했다. 그는 “시간도 절약하고 예상외로 재밌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져온 ‘언택트 송년회’의 풍경이다. 지난 23일부터 수도권에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모두 금지돼 ‘옛날식 송년회’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온라인을 통한 연말 모임이 대안으로 급부상한 이유다.

지난 27일 대학 동기 4명과 ‘20대 마지막 송년회’를 보낸 대학원생 전모(29)씨는 “초대장과 타임테이블을 만들고 각자의 집에서 와인이나 음식 등을 장만해 온라인 송년회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시국에 우울할 수도 있지만, 화면으로 서로를 보며 게임도 하고 깔깔 웃을 만큼 재밌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전모(29)씨가 '20대 마지막 송년회'를 준비하며 만든 포스터와 타임테이블. 독자제공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전모(29)씨가 '20대 마지막 송년회'를 준비하며 만든 포스터와 타임테이블. 독자제공

‘랜선 마피아 게임’ 해보셨나요

랜선 송년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지난 24일 저녁 줌(Zoomㆍ화상 앱)에서 송년회를 열었다는 직장인 조아경(29)씨는 “연말 약속이 줄줄이 취소돼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에서 모였다”고 했다. 그는 “‘마피아 게임’, ‘고요 속의 외침’ 등 게임을 하거나 집이나 가족을 소개하는 ‘러브하우스’ 코너를 만들었다”며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날 고등학교 십년지기 친구 4명과 랜선 송년회를 한 이모(28)씨는 “이 시국에서만 할 수 있는 힙(hip·최신 유행에 밝다는 의미의 신조어)한 모임이라 생각해서 추진했다”고 했다. 이씨는 “떠들다 보니 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괜찮은 방식 같아서 50대 초반인 엄마에게도 가르쳐 드렸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직장인 조아경(29) 온라인 송년회에서 한 명이 그림판에서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사람들이 맞히는 '캐치마인드 게임'을 진행했다. 독자제공

지난 24일 직장인 조아경(29) 온라인 송년회에서 한 명이 그림판에서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사람들이 맞히는 '캐치마인드 게임'을 진행했다. 독자제공

직장인 이모(27)씨는 지난 23일 회사에서 송년회 대신 개최한 온라인 게임대회에 참가했다. 이씨는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이라 직원 250여명과 온라인 게임대회를 열었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게임을 했고 회사에서 직원들 집에 피자도 보내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전 송년회에 비해 오히려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 서로 더 친밀해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한화 솔루션은 올해 처음으로 IPTV와 유튜브를 활용한 연말 행사를 마련했다. SK텔레콤 일부 팀도 구글 미트(화상회의)를 이용해 랜선 송년회를 가졌다.

랜선 송년회에 발맞춘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은 법인사업자만 구매 가능한 ‘B2B 쿠폰’을 출시했다. 회사가 미리 쿠폰 금액을 결제하면 직원들은 이 쿠폰으로 '랜선 회식' 등을 할 때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다” 반응도

송년의 시간에라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26일 15년 지기 친구들과 랜선 송년회를 한 취업준비생 김지현(28)씨는 “드레스코드도 빨간색으로 맞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면서도 “분명 편하고 재밌는 모임이었지만 직접 만나서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완벽히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전모(33)씨는 “화상으로라도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거로 만족하자는 생각이지만, 코로나라는 우울한 이유 때문이란 걸 떠올리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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