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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대통령의 사과를 등진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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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

검찰에 대한 경고를 덧붙여 진정성 논란도 일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성탄 사과에선 나름의 울림이 전달됐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막장 대치로 국민들이 겪은 일을 ‘불편과 혼란’으로 인식했다는 점과 그 출발점이 자신의 임명이었음을 분명히 해서다. 깊이를 알 순 없지만 일정한 성찰의 발로임엔 분명했다.

대통령의 그 진심이 가장 잘 전달되지 않는 곳은 “모두가 친문”(86그룹 중진)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이낙연 대표는 대통령 사과 당일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며 검찰에 날을 세웠다.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는 말도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대통령의 말과는 결이 달랐다.

노트북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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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론 봉숭아 학당이 열렸다. 친문 대선주자를 노리는 김두관 의원은 동료들에게 “윤석열 탄핵에 함께해주기 바란다”는 서한을 돌렸고, 청와대 출신 민형배 의원이 뒤따랐다. 친문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박주민 의원은 28일 “김두관 의원뿐 아니라 탄핵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의원이 굉장히 많다”며 바람을 잡았다. 3선인 정청래·김경협 의원은 각각 추미애 장관 재신임 캠페인과 윤 총장 복귀가 이해충돌이라는 프레임 선전에 나섰다.

이들이 코드를 맞추는 파트너가 문 대통령이 아닌 게 분명했다. 한 비문 의원은 “문빠들의 아우성에 동물적 감각으로 장단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 복귀 후 문빠들이 장악한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특정 온라인 게시판에는 윤 총장 탄핵을 촉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친문 그룹에서도 “당 전반의 분위기가 그런 건 아니다”는 말은 나온다.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파들이 만든 무드는 민주당이 ‘윤석열 복귀 쇼크’의 출구로 또 다른 속도전을 택하는 데 한몫했다. 검찰개혁특위를 띄운 이 대표는 29일 첫 회의에서 “추가로 할 일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간추리고 빨리할 수 있는 것은 빨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간역을 건너뛰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종착역에 빨리 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기의 검찰권 분산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몰아 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아직 출범도 전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탄생할 공룡 경찰의 폐해는 아직 가늠도 못 해 봤다. 백신에는 “안전성이 중요하다”던 이들이 사법체계를 뒤집는 일에선 어디서 끝없는 용기를 퍼 올리는지 알 수 없다. 검사들에 대한 혐오를 동력 삼은 질주가 과연 대통령을 레임덕에서 구하는 길일까.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