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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책임론 회피하는 중국, 하석상대 벗어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2020년 중국의 키워드는

지난 9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코로나19 퇴치 표창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장보리(張伯禮·72·왼쪽) 중국 공정원 원사에게 ‘인민영웅’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중국은 이달 29일까지 확진자 9만6513명, 사망 4782명을 기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코로나19 퇴치 표창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장보리(張伯禮·72·왼쪽) 중국 공정원 원사에게 ‘인민영웅’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중국은 이달 29일까지 확진자 9만6513명, 사망 4782명을 기록했다. [AFP=연합뉴스]

아랫돌을 꺼내 윗돌을 괴는 임기응변을 하석상대(下石上臺)라고 한다. 코로나19로 뒤틀린 2020년의 중국에 걸맞은 표현이다. 세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팬데믹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미지의 바이러스는 인류의 건강을 직접 위협하면서 각국의 정치적 부담과 경제 마비,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여기에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국 압박은 양국 갈등을 격화시켰다. 각국 지도자들은 협력보다는 자국 위주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선택했다. 미국은 바이든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국제 질서와 미·중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일대일로나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추진하려면 #중국적 소프트파워 보완하고 국제사회 설득할 현대적 접근이 필요 #아랫돌 꺼내 윗돌 괴는 하석상대는 임기응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 발원지 논쟁 여전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시작됐고 중국 내 창궐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는 점이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중국은 지난 9월 8일 대내외에 중국 방역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경제·사회 활동으로 돌아가겠다는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 홀로 축제’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국제 사회의 ‘중국 책임론’을 의식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전염병과 맞섰고, 국제적 의료협력을 통한 ‘대국으로서의 책임감’과 ‘국제적 헌신’을 강조했다.

여세를 몰아 중국 중심의 ‘보건 실크로드’ 건설까지 주창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백신을 공공재화 하는 사업인 코백스(COVAX) 참여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미국 등 선진국과 차별성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대처 미흡을 인정하는 데 인색해 대외적으로 ‘바이러스 전파국’이라는 오명으로 중국이 갈망하는 ‘세계적인 국가 중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많은 상처를 입었다.

중국 경제: 수요 확대와 기술 자립 내걸어

중국은 관세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중 압박을 수용할 생각이 없다. 미·중 갈등을 감내하면서 지역 구도를 둘러싼 힘겨루기와 첨단 기술을 둘러싼 경쟁을 계속하겠다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중국이 절취한 기술과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획득한 경제적 이익을 군사력에 투사해 미국의 기존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미국 조야의 중국 인식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미 ‘미국 주도 질서 범위’를 초월했다면서 중국이 승자라는 우월주의를 고취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경제적 반전에 성공했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붕괴 시도를 일축하면서 11월에는 대미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0월 말 공산당 19기 5중전회(中全會·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국내 수요 확대와 국제 무역 활성화를 병행하는 쌍순환(雙循環·dual circulation) 발전과 ‘과학기술 강국 건설’ 목표를 제시했다. 11월 15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타결시켰다. 지역 주도권과 기술 패권에서 끝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장기전 선언이다.

‘자유무역 수호자’ 구호 퇴색시킨 불투명성

중국 역시 코로나19의 피해국이다. 2020년을 중산층 사회 건설을 뜻하는 소강(小康)사회에 진입해 2021년 공산당 창당 100년을 맞이하겠다는 계획도 상처를 입었다.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코로나19의 통제가 가능해지자 ‘중국 발원론’과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레임 전환에 나섰다. 국제적 영향력 확대 및 대미 주도권 확보라는 반전의 계기로 삼았지만, 미국의 신보호주의에 대응하는 ‘자유무역 수호자 중국’의 이미지는 조성에 실패했다. 코로나 방역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한마디로 국제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 투명성과 소프트파워가 미비해 국제적 원군을 확보하지 못했다.

어느 나라든 위기는 있다. 문제는 중국의 대처가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적 사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초기 대응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적 획일성과 전체주의적 명령체계를 활용하면서 정보 통제를 통해 사태를 덮으려 했다.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공산당식 전통 사유에 천착했다. 중국적 특수성을 강조하기보다 보편주의적 성숙으로 정책이 표현돼야 함에도 중국 당국은 진상 규명이나 민생보다는 강력한 통제를 통한 당 중심의 사회 안정이 최우선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사회주의 유지 위한 ‘정치안전’만 치중

미·중 갈등과 관련해 느닷없이 6·25 한국전쟁의 중국식 해석인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소환해 냉전적 사고를 보여줬다. 미국과의 갈등에 강력히 대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지만 이야말로 구식(舊式) 수법이다. 또 미국 대선과 코로나 위기를 틈타 ‘중화인민공화국 우선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앞세워 홍콩 국가보안법까지 제정해 홍콩에 대한 직접 통제에 들어갔다. 티베트와 신장(新彊) 위구르의 인권 문제와 대만 문제에서도 국제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7대 경기 하방 압력과 블랙 스완이나 회색 코뿔소라는 잠재 위기 상황에서 국유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민간 기업이 퇴조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정권의 안전과 사회주의 제도의 유지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안전(政治安全)을 최우선으로 한다.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사건같이 누적된 경제·사회 리스크가 간접적 영향을 통해 정치 리스크로 확대 재생산된 역사적 경험이 있는 공산당 지도부는 정치력은 경색된 이념적 속박성을 이용해, 이데올로기는 압박적 선전방식을 통해 수직적으로 극복하려 한다.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이 과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인민들에게 당의 위대함을 강요하면서 사회주의 중국 발전 모델을 강조한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대로 ‘백 년간 보지 못했던 대혼란’이라는 최대의 불확실성이 중국을 엄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신실크로드)나 운명공동체 구축,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추진하려면 중국적 소프트파워를 보완하면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현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능력(能力) 국가와 매력(魅力) 국가는 다르다. 하석상대는 임기응변에 불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TS·항미원조·김치 논쟁…빗나간 애국주의에 휘둘린 한·중 관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중 관계가 올해 다시 고비를 맞았다. 한국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중국 당국과 네티즌의 빗나간 애국주의가 역사·문화 등에 투영되는 자의적인 중국의 민낯을 다시 목도했기 때문이다.

한류 아이콘 BTS는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공격을 당했다. 중국을 지칭하지도 않았고 이른바 ‘핵심이익’(core interest) 문제도 아닌데 엉뚱하게도 왜곡된 집단 역량의 표적인 된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인 6·25 한국전쟁을 ‘북한을 도와 미국과 대결한’ 항미원조 전쟁이라며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은 도외시하는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연이은 한복 원조 논쟁이나 김치 표준 논쟁에서도 나타나듯 중국은 소프트파워의 공허함을 역사·문화 찬탈과 힘자랑으로 메우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도 중국 여론 선도의 선봉에 선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네티즌의 의견을 빙자해 비이성적 분노를 조장하는 선전전(宣傳戰)을 통한 애국주의 여론전을 전개했다. 중국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14억 시장 ‘경제력의 무기화’ 패턴의 전형이다. 이러한 인식과 행태의 개선 없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상수(常數)가 된 미·중 갈등 속에서 한·미 동맹 구조와 한·중 협력 구조의 차별성도 인식해야 한다. 선택에 몰리지 않으려면 우리 국익을 분명히 하고 사안별로 원칙을 세워 양측을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HK+ 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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