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낙태법 개정 관련 산부인과 단체 기자회견'에서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진의 모형은 자궁 내 태아의 10주(오른쪽부터), 12주, 14주, 16주의 모습. 연합뉴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낙태죄 폐지를 앞두고 ‘선별적’ 낙태 거부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의료계가 요구한 개정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산부인과학회는 28일 낙태죄 폐지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여성의 안전을 지키고 무분별한 낙태를 막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임신한 여성의 낙태는 임신 10주(70일: 초음파 검사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미만에만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선 조건 없이 임신 중지를 허용하고, 임신 15∼24주 이내엔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나 근친 간 임신 등의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이같은정부안에 반대하면서 임신 중지는 임신 10주로 당기고, 임신 22주 미만에 낙태를 원할 경우에는 상담과 숙려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2주 이후에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학회의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이날 호소문에서도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의사가 낙태해 태어난 아기를 죽게 하면 현행법과 판례상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임신 22주부터는 낙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신속히 개정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해달라는 요청을 의사가 양심과 직업윤리에 따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정부와 입법부는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명시된 낙태법을 조속히 만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거부권 명시를 요구했다.
한편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체입법 시한을 오는 31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낙태죄는 내년 1월 1일 자로 효력이 사라지게 된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