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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관둘래요" 밀려드는 중환자에 지친 전공의의 엄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1)

요즘 중환자실 환자의 중증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중에서도 이번 주는 최악이었다. 밥 먹듯이 심폐소생술을 했으며, 떠들썩한 에크모 환자도 여럿 있었다. 중증도가 높아지면 많은 환자를 잃는 건 당연하다. 어차피 의사는 날고 기어 봐야 고작 인간이다. 중환자가 늘어나면, 온몸을 내던져도 죽음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감염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아니므로 직접적으로 코로나 환자를 보진 않는다. 때문에 코로나로 더 힘들어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명백한 코로나의 2차 피해자였다. 내가 맡는 환자 숫자가 많아졌고 중증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일반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치료 시기를 놓친 환자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우리 앞에 도착했다. 도저히 손 쓰기 어려워진 후에야. 그렇다고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뒤늦게라도 치료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품이 들어갔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된 꼴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전방에서 병원을 압박해왔다. 주변 병원은 하나둘 돌아가며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폐쇄를 반복했다. 폐쇄가 두려워 위험한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점점 늘어났다. 남은 병원에는 그만큼 더 중증 환자가 몰렸다.

코로나 때문에 일반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치료 시기를 놓친 환자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우리 앞에 도착했다. [사진 pixabay]

코로나 때문에 일반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치료 시기를 놓친 환자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우리 앞에 도착했다. [사진 pixabay]

나와 함께 중환자실을 맡은 전공의는 반쯤 기계가 되었다. 살리면 집으로,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엄청난 속도로 환자를 처리해냈다. 눈부신 회전율로 중환자실을 비워냈다. 덕분에 하나라도 더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전공의를 하염없이 칭찬하며 빈자리를 새로운 환자로 채워 넣었다. ‘열심히 해도 담당 환자 숫자가 줄지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깨달은 전공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자고 일어나는 족족 처음 보는 환자가 줄줄이 누워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래 본 환자에 비해 새로운 환자는 손이 훨씬 많이 간다. 파악해야 할 정보만 해도 산더미다. 업무량이 늘어난 만큼 스트레스가 높아졌다. 전공의에겐 이제 칭찬이 통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흐르니 협박마저 하기 시작했다.

“저 그만둘래요. 더는 못하겠어요. 내일부터 안 나올게요.”

하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저게 진심이면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때려치웠겠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환자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협박이 애교로 들렸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하소연일 테니 그냥 넘겨서만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공의를 달래주기로 했다. 얼른 끝내고 나가서 시원한 맥주를 사주겠노라 선언했다.

“이미 9시 지났어요. 맥주를 어디 가서 먹어요?”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가게들이 저녁에는 장사를 안 한다고 했다. 나는 화들짝 놀란 시늉을 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행세했다. “진짜 진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라며 아쉬운 척을 해 보였다. 오늘도 말로 때운 것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밖에 나가 술이나 마시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못하다.

전공의는 변함없이 아침 일찍 출근했다. ‘오늘 그만둔다며?’라고 짓궂게 놀리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꾹 삼켰다. 전공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전공의는 변함없이 아침 일찍 출근했다. ‘오늘 그만둔다며?’라고 짓궂게 놀리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꾹 삼켰다. 전공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긴 하루를 마쳤지만 동시에 긴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날짜가 바뀐다고 중환자실 일과에 끊김이 있을 리 없으니까. 출출한 배를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 온통 불이 꺼진 상점들 사이로 가로등만이 덩그러니 빛나고 있었다. 도로엔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옛날 통금 시대 모습이 이랬을까? 밤을 새워 웃고 떠들던 골목의 모습이 그리웠다. 10년 넘게 밤 허기를 달래주던 병원 주변 가게들의 굳게 닫힌 철문이 야속했다. 2020년의 겨울은 바람이 몹시도 차가웠다. 인적 없는 거리에서 나는 쓸쓸한 공기만 가득 마신 채 병원으로 돌아왔다.

전공의는 변함없이 아침 일찍 출근했다. ‘오늘 그만둔다며?’라고 짓궂게 놀리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꾹 삼켰다. 전공의 눈빛에 독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자를 앞에 두고 미간에 주름을 한껏 짓고 있었다. 하긴 어젯밤에도 뜨거웠었지. 전공의는 차트를 통해 어젯밤에 벌어졌을 처절한 싸움을 눈앞에 그려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귀여웠다. 오늘도 저 못지않은 많은 중환자가 우릴 찾아올 테니 어서 새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 이제 이게 일상이니까. 그렇더라도 그 전에 어젯밤 간당간당 숨만 붙여놓은 환자부터 해결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전공의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살려라. 어떻게든 살리고 저녁에 맥주 마시러 가자!”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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