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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노무현의 사과, 이 정부의 현실 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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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과거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에 극심한 민심 이반을 겪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한때 12%(한국갤럽 조사)까지 추락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빼놓을 순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지만 시중에선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2007년 신년 연설에서 “부동산,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실패를 인정했다.

반시장 부동산 정책 실패 판박이 #변창흠 후보자 막말에 특혜 의혹 #임기 말에 사과할 일 추가 말아야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뭔가 다를 줄 알았다.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주택시장을 꼭 안정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지난 3년 7개월의 부동산 정책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심한 상실감과 배신감을 안겨줬다. 정부가 맞춤형 대책을 자처하던 ‘핀셋 규제’는 번번이 ‘풍선효과’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 왔고 전국적으로는 집값이 하락할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라도 했지만, 문 대통령은 집값 급등이란 현실을 아예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사람만 바보가 됐다.

‘빵 장관’이란 놀림을 받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질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그런데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를 보면 ‘산 넘어 산’이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특히 변 후보자에겐 ‘인간의 품격’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녔던 열아홉살 김군은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졌다. 우리 사회가 온통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던 변 후보자는 “걔(김군)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는 막말을 하고 있었다. 변 후보자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노동인권 감수성의 결여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이자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맞지 않는다”며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어처구니가 없다. 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성의 경우 화장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아침을 (모르는 사람과) 같이 먹는 건 아주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변 후보자의 말대로면 화장을 하지 않거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여성은 뭐가 되나.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변 후보자는 (여성은) 무조건 화장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에 동의하는 것인가. 성인지 감수성 없는 국토부 장관이 실행하는 ‘공유주택’에 어떤 여성이 맘 편히 살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임대주택 ‘방문 쇼’에 인테리어 비용으로 4290만원을 지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변 후보자였다는 점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청와대 해명대로 “신혼부부에 아이 두 명도 가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단정이 아닌 질문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네”라고 대답한 변 후보자가 문제였다는 얘기다. 해당 인테리어 업체를 둘러싼 특혜 의혹도 있다. 견적서에는 사업자 등록번호가 빠져 있었고, 사업장 주소는 일반 주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가장 큰 공통점은 반시장적 규제다. 어떤 시장이든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 가격은 안정된다. 정부가 주택 공급의 믿음을 주지 못하니 시장에선 집값 상승세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유발했거나 방치한 무능을 드러냈다. 더욱 딱한 건 일이 저질러진 다음엔 ‘시장’을 무시하고 급조해낸 ‘과격한 방안’을 들고나와 그걸 ‘진보’라고 부르짖으면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진보 꼴통’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게 강 교수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변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반시장적 규제를 더 세게 밀어붙일 것이란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사과할 일을 추가하지 않길 바란다.

주정완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