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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 자가격리 세 번, 세오는 이제 청두의 푸른 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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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정원 청두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한다는 각오로 중국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진영 기자

서정원 청두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한다는 각오로 중국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진영 기자

“협상 테이블에 구단주이자 모기업(중국 싱청그룹) 부회장이 나왔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K리그 수준의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어달라. 시간과 돈, 사람까지 필요한 건 뭐든 지원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중국 프로축구 청두 싱청 감독 부임 #구단주 “K리그 DNA 심어달라” #한국인 9명, 매머드급 코치진 구성

최근 중국 프로축구 갑급리그(2부) 청두 싱청과 3년 계약을 맺고 사령탑에 오른 서정원(50) 감독을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축구테마파크 풋볼팬타지움에서 만났다. 2018년 프로축구 수원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2년 만의 현장 컴백을 앞둔 상황. 현역시절 ‘세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의 승부사 본능이 다시금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중국 축구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한때 1·2부리그 구분 없이 수많은 구단이 천문학적 운영비를 쏟아붓던 시절이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14일 중국축구협회가 발표한 2021시즌 운영 계획에 따르면 수퍼리그(1부)의 경우 구단별 연간 재정 지출이 6억 위안(1015억원)을 넘을 수 없다. 2018년 기준 수퍼리그 구단 평균 지출액은 11억2600만 위안(1900억원). 선수단 인건비를 포함해 예산의 절반 가까이 도려내야 하는 셈이다.

서 감독이 도전할 갑급리그도 비슷하다. 운영비 한도액이 2억 위안(340억원)으로 묶였다. 예산이 반 토막 이하로 줄어든 팀들이 부지기수다. 청두가 서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한 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쓰면서도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K리그 노하우를 이식받기 위해서다.

서 감독은 “쉬는 동안 K리그와 일본 J리그, 중국 수퍼리그 여러 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동남아지역 국가대표팀 러브콜도 있었다. 하지만 고심 끝에 모두 거절했다. 청두를 선택한 이유는 경기력과 선수단을 넘어 구단을 총체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두는 2부 팀이지만, 중국 축구계가 모범 사례로 주목한다. 포브스 선정 세계 500대 회사에 이름을 올린 중국 국영기업 싱청그룹이 4부리그 팀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전폭적으로 지원해 3부로, 2부로 승격을 거듭했다. 흥미로운 건 거액을 들여 좋은 선수부터 사들이는 여느 중국 팀들과 달리 인프라에 먼저 투자했다는 점이다. 중국 2부리그 팀 중 유일하게 최신식 축구 전용구장을 지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클럽하우스도 유럽 여러 구단을 벤치마킹해 내실 있게 준비 중이다.

청두는 서 감독에게 구단 개조 프로젝트의 전권을 맡겼다. ‘간판 빼고 다 바꾼다’는 구단주의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다. 서 감독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낡은 운동시설과 의료 설비에 대한 개선을 요청했는데, ‘원하는 물품으로, 원하는 수량 만큼 교체하라. 모든 걸 믿고 맡긴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엔 기뻤지만, 갈수록 책임감이 커진다”고 했다.

코치진도 K리그 올스타급으로 구성한다. 서 감독을 비롯해 11명으로 꾸려지는데, 그중 9명이 한국인이다. 김대의 수석코치, 곽태휘 수비코치를 비롯해 비디오 분석관, 의무 트레이너 등 주요 전문인력이 한국인들로 채워진다. 서 감독은 “내 축구 철학을 이해하는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하게 돼 든든하다. 중국 축구에서 흔치 않은 저비용 고효율 팀을 만들어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서 감독은 “최근엔 바깥 활동보다 격리장소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수원의 푸른 별(수원 시절 별명)’에서 ‘청두의 푸른 별’로 거듭나기 위한 인고의 시간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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