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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않고 은밀한 미션 수행…장수풍뎅이 로봇 만든 한국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수풍뎅이와 건국대 박훈철 교수팀이 개발한 장수풍뎅이 로봇 KU비틀. 왕준열 기자

장수풍뎅이와 건국대 박훈철 교수팀이 개발한 장수풍뎅이 로봇 KU비틀. 왕준열 기자

비밀요원이 풍뎅이처럼 생긴 스파이 로봇을 하늘로 날립니다. 아무도 모르게 테러단체의 본거지 내부로 침투한 곤충 로봇. 요원들은 로봇의 카메라를 통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데요.

[애니띵]장수풍뎅이 비행의 비밀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의 한 장면입니다. 이렇게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곤충 비행 로봇을 국내에서 실제 개발 중이라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내 연구진,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는 비행 로봇 개발 

장수풍뎅이. 건국대

장수풍뎅이. 건국대

곤충계의 헤라클레스로 알려진 장수풍뎅이.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장수풍뎅이는 국내에 서식하는 풍뎅이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고, 자기 체중의 50배 이상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죠.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엔 장수풍뎅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장수풍뎅이 날개 원리를 모사해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는 비행 로봇을 개발했다는 내용이에요.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장수풍뎅이 로봇의 비행 장면. 장애물과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고 비행을 계속한다. 건국대 제공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장수풍뎅이 로봇의 비행 장면. 장애물과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고 비행을 계속한다. 건국대 제공

실제로 초고속 카메라로 비행 장면을 촬영한 영상에서 날개가 장애물에 부딪혀도 추락하지 않고 계속 날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0일 비행 로봇을 개발한 건국대 박훈철 교수 연구팀(스마트운행체공학과)을 만났습니다.

“2005년부터 생태모방연구…날개 장치 개발에만 5년”

장수풍뎅이 로봇을 개발한 건국대 박훈철 교수(왼쪽)와 판호앙부 박사. 왕준열 기자

장수풍뎅이 로봇을 개발한 건국대 박훈철 교수(왼쪽)와 판호앙부 박사. 왕준열 기자

항공우주과학자인 박 교수가 생태모방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부터였습니다. 장수풍뎅이는 평소엔 날개를 여러 번 접어서 숨겨뒀다가 비행할 때만 날개를 펴는데요. 물이나 천적으로부터 날개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박교수는 이런 장수풍뎅이의 생태적 특성에 주목했고, 15년 동안 장수풍뎅이의 날개와 비행기술을 연구한 끝에 곤충 로봇, 'KU비틀'을 개발했습니다.

어떻게 장수풍뎅이 비행기술을 연구하게 됐나요?
“점심 먹고 학교를 한 바퀴 항상 도는데, 무당벌레가 날개를 딱 펴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저런 것을 한 번 모방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무당벌레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그때 한창 장수풍뎅이를 애완동물로 파는 것이 붐이었어요. 그래서 장수풍뎅이를 구매해 관찰하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장수풍뎅이 로봇은 어떻게 추락하지 않고 날 수 있는 건가요?
“장수풍뎅이는 장애물에 날개가 부딪쳤을 때 접혔다가 바로 펴져요. (로봇 날개에 적용한) 초탄성 형상기억합금도 굽혀졌을 때 에너지를 모아서 원래 모양으로 돌아와요.”
장수풍뎅이가 날개를 펼친 모습. 왕준열 기자

장수풍뎅이가 날개를 펼친 모습. 왕준열 기자

드론이랑 곤충 로봇은 어떻게 다른가요?
“드론은 프로펠러에 직접 모터를 꽂아요. 자세 제어나 비행 등 기술적인 관점에서 드론은 굉장히 쉬운 기술이죠. 하지만 곤충은 날갯짓하면서 모양을 바꿔야 해요. 그래야 자세 조종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훨씬 난이도가 있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장수풍뎅이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있다면?
“심장에 해당하는 날갯짓 장치가 180~190도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공기력도 나오고 제어력도 나오고 하는 것인데, 거기에 시간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거의 5년 걸렸다고 봐야죠.”

“소음 적어 스파이 로봇으로 활용”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에 등장한 곤충 스파이 로봇. 아이 인 더 스카이 예고편 캡쳐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에 등장한 곤충 스파이 로봇. 아이 인 더 스카이 예고편 캡쳐

개부터 두더지까지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모방한 로봇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요. 곤충 로봇의 경우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에너지 효율이 높습니다. 드론과 달리 소음도 적고요. 이런 장점 때문에 은밀한 미션을 수행하는 스파이 로봇은 물론 화성과 같이 극한의 환경을 탐사하는 로봇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정말 장수풍뎅이 로봇을 스파이로 투입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고)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저희가 생각했던 바로 그 형상, 장수풍뎅이 모방 로봇이 나와요. 육군이나 이런 곳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었어요. 미국에서 영화가 나올 정도면 우리나라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단계까지 간다면 숨어서 적에게 탐지 안 되고 미션을 수행하는 그런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더 연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 대기 밀도가 1이라고 하면, 화성의 밀도는 70분의 1이에요. 곤충의 날갯짓을 이용해서 화성과 같이 공기 밀도가 낮은 곳에서 비행할 수 있는 비행체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도 해보고 싶고요. 곤충의 비행효율은 매우 높다고 보고돼 있는데, 그런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왕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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