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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DNA로 이춘재 잡은 국과수, 5년새 27명이 짐싼 까닭

중앙일보

입력

30여년이 지난 화성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를 ‘이춘재’로 특정하며 관심을 끈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주요 업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 인력은 정원에 한참 모자란 상황이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이춘재가 출석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뉴스1

지난달 이춘재가 출석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뉴스1

중앙일보가 26일 국과수에서 받은 ‘국과수 법의관 현황’과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법의관은 33명으로 정원인 53명에 20명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의관 충원율은 지난 5년간 2016년 88.8%(36명 중 32명), 2017년 64.4%(45명 중 29명), 2018년 57.6%(52명 중 30명), 2019년 54.7%(53명 중 29명), 2020년 62.2%(53명 중 33명)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정원을 늘렸지만, 지원자 부족 때문에 인력난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법의관 정원 수요는 늘어나는 부검 건수 때문에 증가하고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시신 부검ㆍ검안 건수는 2015년 6789건에서 2019년 8529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법의관 1명이 294건의 부검을 진행했다. 송호림 경찰청 총경은 지난 2월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국과수 소속 법의관은 공통으로 연평균 150~200회 정도 부검횟수가 적절하다 지적한다”며 “하지만 현재 법의관은 연평균 300건의 부검을 담당하며 과도한 업무분담을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우 열악…5년간 27명 떠났다

“법의관들은 대학 병원을 운영하거나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기들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고 있고 이러한 문제점은 법의관들이 업무를 이행하면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송 총경이 논문에서 법의관의 처우 문제를 언급하며 지적한 대목이다. 실제로 행안부에 따르면 일반병원 의사의 평균연봉은 1억6500만원이지만 국과수 법의관의 평균 연봉은 여기에 못 미친다. 5년 차 5급 법의관이 8000만원, 13년 차 4급 법의관이 1억1000만원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직률도 높다. 최근 5년간 국과수 전체 퇴직자 수는 27명, 법의관 퇴직자 수는 8명이다. 인력 부족으로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이직률도 덩달아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근무환경 개선해야” 

강원 원주시 반곡동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박현주 기자

강원 원주시 반곡동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박현주 기자

전문가는 국과수 인력이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법의관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되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등 사인 규명 안 된 상태로 끝나는 사건이 많아진다”며 “법의관이 최소한 의사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급여체계가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는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차세대 기초의학 발전을 위해 법의학을 첫 번째 순위로 뽑아 투자한다”며 “한국 정부도 의대생들이 법의학 전공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을 통해 장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의원도 “국과수 내 법의관 인력 부족 현상은 병리학 분야 전공의 숫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행정안전부의 노력이 부족한 탓도 크다”며 “최근 5년간 국과수 퇴사 인원 중 30%가 법의관이라는 점은 행정안전부의 인력관리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 의원은 “전공의에 대한 민간 대비 낮은 처우와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업무부담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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