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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훌륭하다고 저자까지 훌륭하지는 않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7호 21면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
김태환 지음
문학실험실

‘저자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이 표현의 저작권자인 철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라는 ‘기표(記標)’와 함께 유행어처럼 통용된 적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자의 죽음’이라는 표현의 뜻을 우리는 대충은 알고 있다. 텍스트의 의미는 똑똑하고 천재적인 저자가 시혜적으로, 열등한 독자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 후 저자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나. 사망 선고 이후 여전히 묻혀 있나. 이런 점이 궁금한 독자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에 따르면 저자는 복권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저자의 부활’, ‘저자의 귀환’ 바람이 불면서다.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다. 누구나 잠재적인 독자이고, 아무리 책의 문화가 황혼기를 맞고 있다고 하더라도 책은 여전히 유력한 정보 출처이자 오락거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만큼 저자가 되는 문턱이 낮아졌고 경로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저자와 독자 사이의 소통을 둘러싼 변증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얘기가 아니다.

책의 핵심 메시지가 책 제목,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에 집약돼 있다. 실제 저자는 누군지, 가상 저자는 누군지 먼저 파악하는 일이 책을 소화하는 순서다.

실제 저자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인간을 뜻한다. 책에 따르면 텍스트 해석의 준거점이자 미적 이상의 구현자, 사회적 현실과 씨름하는 살과 피와 욕망을 가진 인간이 실제 저자다.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유명 저자’ 헤밍웨이 작업실의 타자기. [사진 Acroterion]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유명 저자’ 헤밍웨이 작업실의 타자기. [사진 Acroterion]

가상 저자는 독자가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독자 의식 속의 저자다. 책에 따르면, 독자는 책을 읽으며 책이 담고 있는 의미의 생산자로서 저자를 상상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한 가상 저자와 현실의 실제 저자를 동일시한다. 책을 읽으며 상상한 저자를 실제 저자와 같은 인물, 같은 역량과 덕성을 갖춘 동일한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이 대목이 생각만큼 그리 자명한 게 아니라는 게 책의 기본 전제다. 실제로 겪어보니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저자가 예상과는 달랐다는 얘기를 종종 듣지 않나. 이 책의 저자인 김태환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그런 저자 상상과 동일시가 “독자가 수행하는 핵심적 조작”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조작’이라고 표현한 독자의 오해 또는 착각으로 인해 책의 가치를 저자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이름 있는 저자의 가치를 책의 가치로 여기는, 그러니까 저자가 훌륭하니 책도 훌륭하리라고 여기고 독서를 시작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의 바탕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가 독단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저자는 최종적인 글쓰기의 산물이 어떤 의미를 품게 될지 쓰기 전에는 모른다. 우리 눈앞의 물리적인 한 권의 책은 작가의 의도를 말끔하게 구현해주는 완벽한 완성체가 아니다. 지난한 글쓰기의 여러 단계에서 발생한 여러 판본 가운데 맨 마지막에 성립한 판본일 뿐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다.

신준봉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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