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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표 음식, 피시앤칩스 아닌 ‘치킨 티카 마살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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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호 22면

런던 아이

최근 영국에서 발견된 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한국과 영국을 연결하는 항공편의 운항이 연말까지 일시 중단됐다. 잠시이긴 하지만 이런 사태가 더 연장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럴 때일수록 영국인인 나는 모국과 모국의 음식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피시앤칩스, 유럽 내륙서 온 요리 #고기 안 먹는 금요일에 주로 제공 #영국인, 1년에 10회 미만만 먹어 #카레지만 인도엔 없는 치킨 티카 #영국 전역에서 즐기는 국가 음식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도 인기 메뉴

나는 10대 시절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 모두가 피시앤칩스(fish & chips)가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과 동료들은 영국 여행을 가면 가장 먼저 먹어 볼 음식으로 피시앤칩스를 꼽았다. 미국 친구들은 영국 사람들이 피시앤칩스를 매일 먹는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사실 영국인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일조했다.

한국의 모든 영국식 펍에서 파는 메뉴에는 피시앤칩스가 반드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실제로 피시앤칩스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 피시앤칩스는 영국의 전통 음식이 아니며,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영국 음식 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신문지에 싼 피시앤칩스, 휴가지 특별식

1 영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꼽히는 치킨 티카 마살라. 2 영국인들이 1년에 10번도 먹지 않는다는 피시앤칩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셔터스톡]

1 영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꼽히는 치킨 티카 마살라. 2 영국인들이 1년에 10번도 먹지 않는다는 피시앤칩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셔터스톡]

자라면서 우리 가족은 바닷가에 휴가 가서만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이건 영국 전통이다. 이때 피시앤칩스는 신문지에 싸여 나온다. 치피(chippies)라고 불리는 피시앤칩스 가게들이 전국에 있지만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주 사 먹지는 않는다.

‘영국인은 피시앤칩스를 자주 먹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영국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봤는데, 그 결과는 내 의견과 일치했다. 응답자 중 피시앤칩스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은 1년에 10번 정도 먹는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들이 피시앤칩스를 먹는 평균 횟수는 1년에 4~6회였다.

피시앤칩스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시장 자료에 따르면 100년 전만 해도 영국에는 2만5000개의 피시앤칩스 가게가 있었다. 그 숫자는 현재 1만 개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모두가 영국인들은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주식으로 먹는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과거에 많이 먹었던 전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국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기독교 국가였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 국가들처럼 금요일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금요일에는 육식을 피했다. 하지만 생선은 고기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금요일은 생선을 먹는 날이 됐다. 생선을 가장 쉽게 먹는 방법을 찾다가 튀겨서 감자튀김과 함께 먹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요일에 피시앤칩스를 먹는 전통에서 기독교적 요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금요일에 어떤 음식이든 먹는다. 하지만 영국의 많은 학교, 병원, 식당 등은 여전히 금요일마다 피시앤칩스를 제공한다.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된 후 영국 문화에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 의사가 영국에 있는 병원으로 실습을 갔다면, 금요일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피시앤칩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항상 피시앤칩스를 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는 인도 카레라이스의 일종인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다. 영국 전역의 수많은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이 카레는 인도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영국 특유의 음식으로 여겨지지만 영국 밖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국은 매우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부분의 영국 음식이 다른 지역과 관련이 있다. 또한 영국은 오랫동안 다른 문화권의 음식을 영국의 문화로 받아들여 왔다. 예를 들면, ‘민스 파이(mince pies)’는 말린 과일, 견과류, 알코올로 만든 ‘민스 미트(mince meat)’로 속을 채워 만든 달콤한 파이로 영국에서 크리스마스의 가장 상징적인 전통 음식 중 하나다. 더 자세히 알아보면, 민스 파이 안에 들어가는 민스 미트는 1000년 전 영국 십자군이 성지에서 영국으로 가지고 온 요리법에 근거했다고 한다.

피시앤칩스를 훨씬 더 깊게 파고들어 가 보면 영국에서 온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영국 요리의 일부로 자리 잡았지만 2009년 BBC의 연구에 따르면 피시앤칩스는 벨기에, 프랑스 또는 네덜란드 중 한 곳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반면 전통 영국 요리라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요리들도 있다.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는 감자·야채·그레이비소스를 소고기 혹은 닭고기 요리와 함께 곁들여 일요일에 먹는 영국 전통 식사다. 이는 영국인들이 매우 보편적으로 먹는 고전적인 음식이라서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을 ‘레 로스비프(les Rosbifs·로스트비프의 프랑스어)’라고 부르며 놀릴 정도다.

영국식 아침 식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영국식 아침 식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영국식 아침 식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the full English breakfast)’도 영국 전통 음식이다. 소시지·베이컨·달걀·버섯·토마토·삶은 콩·토스트를 기본으로 하고 종종 해시브라운도 함께 나오는 이 거대한 아침 식사는 빼놓을 수 없는 영국 음식이다. ‘풀 잉글리시(full English)’ 또는 지역에 따라 ‘풀 스코티시(full Scottish)’ ‘풀 아이리시(full Irish)’ ‘풀 웰시(full Walsh)’라고 불리는데, 영국에서 여전히 매우 인기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먹지는 않는다.

사실 전통 영국 음식을 하나로 꼭 집어 정하는 건 매우 어렵고, 아마도 영국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17년 시장조사 전문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으로는 중국 음식이 35%를 차지하며 가장 높았고, 그 다음 인도 음식 24%, 피자 13%, 피시앤칩스 7% 순이었다. 영국은 다양한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다른 나라의 음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물론 영국 자체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라는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문화들은 모두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을 가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해기스(haggis: 양의 내장과 기름, 양파, 귀리를 섞어 만든 소를 양의 위에 채워 넣은 요리), 웨일스의 웰시 래빗(Welsh rarebit: 토스트 빵 위에 녹은 치즈가 얹혀져 있는 요리), 북아일랜드의 감자빵 (potato bread: 으깬 감자와 밀가루로 만든 납작한 빵), 잉글랜드의 요크셔 푸딩(Yorkshire pudding: 밀가루·달걀·우유를 섞은 반죽을 구워 만든 푸딩으로 고기와 그레이비 소스와 함께 곁들여 먹는 요리)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 음식들도 각 지역 문화에 고유한 수백 가지 음식들 중 몇 가지 예시에 불과하다.

여러나라 요리 받아들여 영국식 재창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피시앤칩스지만 오늘날 전통 영국 음식을 대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의 깊이와 다양성은 감자와 생선을 튀겨 신문지 위에 올려 주는 단순한 음식 하나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치킨 티카 마살라가 영국의 국가 음식이라고 종종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 중 하나이며 오늘날 영국 요리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영국으로 여행을 가서 피시앤칩스를 먹어 보고 싶다면 당연히 그러기를 권한다. 하지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선데이 로스트, 인도식 카레, 중국식 차우멘, 케밥, 스시도 꼭 먹어 보길 바란다. 이 모든 음식이 바로 영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영국 음식이기 때문이다.

※번역: 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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