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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에 쏠림 심해, K백신 만들 기초의학자 씨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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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호 10면

[SUNDAY 추적] 백신 개발 낙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가장 중요한 만큼 임상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 관련해 지난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중 일부다. 해외 백신 확보와는 별개로 국내 원천기술로 개발 중인 ‘K백신’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9일 수도권 방역상황 긴급점검 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국내 기업들의 치료제 개발 빠른 진전으로 백신 이전에 치료제부터 먼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의사 면허 소지한 기초의학자 #10년간 30~40명 증가에 그쳐 #의대, 임상의사 양성 위주 교육 #기초의학 대폭 축소, 폐지 추세 #전공생 일자리도 하늘의 별따기 #국민 건강 차원 국가가 나서야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기초의학계는 냉담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생화학 등 기초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초의학에 대한 기초체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의 예산 투입만으로 백신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임상의학에 쏠려 있는 국내 의료시스템 개선 없이는 K백신 개발은커녕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 발생 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단 목소리가 나온다.

기초의학자는 인체 기능부터 바이러스, 질병 치료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 의학 연구자다. 통상 미생물학·병리학·예방의학·해부학 등 8개 분야가 기초의학으로 분류된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의 ‘2016년 기초의학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기초의학 분야 전임 교수는 1298명이다. 2002년(1219명)에 비해 6.5%(79명)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중 의사 면허를 소지한 기초의학자는 30~40명뿐이다. 반면 환자 진료 분야에 해당하는 임상의학 전임 교수는 2010년 8748명으로 2002년(6386명) 대비 37%나 증가했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대학 내 성과주의탓에 기초의학을 담당하는 교수 현재 더욱 줄어들고 전문 연구원 역시 메말라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의사국시도 기초의학 평가 안 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기초와 임상의학 사이의 불균형 원인으로 임상의사 양성 위주의 의대 교육과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학생들에게 환자 진료 역량을 강조하다 보니 기초의학 교과목은 자연스레 외면받는 모습이다. 대한기초의학협의회가 발간한 ‘2015년 기초의학백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기초교실별 개설되는 이론 강좌 수는 평균 2.6개였다. 실기 강좌는 개설되지 않는 곳이 다수였다. 전용성 대한기초의학협의회 회장(서울대 생화학)은 “2000년대부터 통합교육과정 기조 하에 기초의학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의사국가고시마저 기초의학 분야를 평가하지 않으니 의대생들의 임상 쏠림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안덕선 소장 역시 “정부가 장학금을 통해 기초의학 전공생을 유치하겠다고 하지만 학비가 문제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수업 자체가 의대 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백신 개발에만 연 2조원 투자

더 큰 문제는 기초 전공생들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란 점이다. 의대 졸업 후 주요 대학 병원으로 취직하는 임상의와 달리 기초를 선택한 전공의들은 대학 병원 진입이 어렵다. 국내 대학 병원 운영이 환자 진료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의료 연구에 투자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 연구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분야다 보니 매년 예산 지원을 장담할 수 없다. 기초 연구자가 해외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이유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는 “바이러스와 감염병 대응 인력은 사실상 국가가 채용해야 하는데 바이러스가 유행하지 않으면 해당 연구원들을 마치 ‘필요하지 않은 인력’으로 치부한다”며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으니 전공생들이 다시 임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용성 회장은 “현재 국내 민간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지만 제약사 역시 민간 조직이란 한계가 있다”라며 “국민 건강이라는 의료적 접근 차원에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의학 위기 탓에 의료계는 2010년대부터 의대별 의사과학자(physician scientist) 양성 R&D 사업을 확대했다. 기초연구를 원하는 임상 의사들이 전일제 대학원에 입학해  연구 경험을 쌓으며 석·박사 학위 취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임상의사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애초 의대에서부터 기초 분야를 선택한 기초의학자는 지원에서 제외된다. 또 학위를 취득한 임상 의사가 박사과정 후 연구원 생활 대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연구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주요 국가들은 장기투자라는 정공법을 통해 기초의학 강국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모더나 백신 개발에 참여한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7개의 연구소와 연구센터로 이뤄져 미 기초의학 연구의 중심으로 꼽힌다. 연간 33조원의 연구비를 운영하고 있고 이중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만 2조원가량을 투자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의대 교육과정 개선에 나섰다. 일찌감치 일본 사회에 드리운 저출산·고령화 위기 때문이다. 국가가 직접 신진연구자를 채용하고 연구비를 지원해 기초연구자들의 이탈을 막고 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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