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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댄스 어우러져 세계를 홀린 21세기 판소리…“내년엔 록페 참가하고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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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호 08면

국악 크로스오버 열풍

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장영규·안이호·신유진·정중엽·이철희·이나래·권송희. 전민규 기자

밴드 ‘이날치’. 왼쪽부터 장영규·안이호·신유진·정중엽·이철희·이나래·권송희. 전민규 기자

2020년은 전 세계에 ‘한국적 댄스음악’을 알린 원년이다. ‘범 내려온다’ 등 판소리 ‘수궁가’에 EDM 비트를 결합한 ‘이날치’의 신묘한 음악에 현대무용을 하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합을 맞춘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시리즈는 각종 플랫폼에서 총 5억 뷰를 넘어섰다.

밴드 ‘이날치’ 영상 5억뷰 #‘수궁가’에 EDM 비트 입혀 재구성 #외국인 “노랫말 몰라도 못 빠져나와” #판소리 장점 살려 리듬감 위주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춤도 한몫 #“내년 초 ‘여보나리’ 신곡 기대를”

“I don’t understand anything but I can’t stop listening to this song(이 노래를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라는 댓글처럼 외국인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지만, 진정한 ‘컬처쇼크’는 한국인들 몫이었다. 재미는 없지만 잘 보존해야 할 것쯤으로 치부하던 우리 전통이 현대 감각과 이렇게 힙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치의 성공은 최근 몇 년 새 뜨거웠던 국악 현대화·세계화 트렌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악과 EDM, 현대무용의 크로스오버로 완벽히 ‘K팝화’된 국악 3.0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다.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전주편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전주편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올 하반기 전세계를 강타한 ‘이날치’는 영화 ‘전우치’ ‘놈놈놈’ ‘곡성’ 등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던 베이시스트 장영규(52)를 중심으로 드러머 이철희(50)와 베이시스트 정중엽(37), 소리꾼 안이호(40)·이나래(34)·권송희(33)·신유진(27)이 뭉친 7인조 얼터너티브 밴드다. 줄타기 명인으로도 유명했던 조선 후기 여덟 명창 중 한 분의 이름에서 따왔다니, 애초부터 전통과 현대 사이의 줄타기를 잘하겠다는 각오였을까. “여러 분야에 이름을 남긴 천재적인 분인데, ‘날치’라는 말의 생경하고 싱싱한 어감이 좋았어요. 질문을 자꾸 받다 보니 ‘전통과 현대 사이 줄타기’라는 생각도 덧씌워지긴 했는데, 사실 그런 질문을 받을 만큼 관심을 얻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죠.(웃음)”(이호)

사실 이날치는 갑자기 튀어나온 밴드가 아니다. 리더인 장영규는 궁중 음악·불교 음악·판소리의 재해석을 시도했던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과 경기민요  록밴드 ‘씽씽’을 이끌며 국악을 소재로 다양한 작곡 실험을 해왔다. “주변에 전통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자연스러운 호기심으로 같이 프로젝트를 해 왔어요. 그냥 내가 재밌고 궁금한 음악을 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그렇게 오래 하다보니 생계 문제로 떠나는 친구들이 생기더군요. 국악인들과 대중음악을 할 수 없을까 고민이 들었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 마음을 먹게 됐죠.”(영규)

그가 마음을 먹자, 국악은 대중음악이 됐다.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건 소리꾼들이다. “저와 생활을 공유하지 않던 사람들, 그야말로 일반 대중의 관심과 피드백을 받은 일 자체가 없었거든요. 다행히 그런 관심이 다른 소리꾼이나 국악 베이스의 음악인들에게도 조금씩 전해지고 있다고들 해요. 관광공사 영상에 함께해 주셨던 방수미 명창은 그 후 제작된 전통 소리 영상이 수십만 뷰가 나왔고, 국립극장 완창 시리즈를 보러 갔다는 분들도 계세요. 선생님들도 ‘니들 덕본다’면서 응원해 주십니다.(웃음)”(이호) “초반 공연에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 하겠다고들 하셔서 팸플릿에 가사를 실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이제 분위기가 역전됐어요. 어렵다던 관객들이 가사도 좀 공부해볼까 하면서 스스로 찾아보게 된 거죠.”(유진)  “처음엔 관객 중 80%가 국악인이었다가 갈수록 역전되는 것도 재밌어요. 이제 국악인 특유의 추임새는 거의 사라지고 오히려 일반인들이 ‘얼씨구’ 하시는데, 딱 들으면 알거든요.(웃음)”(나래)

베이스·드럼·소리꾼 뭉친 7인조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편곡하는 과정이 궁금한데.
영규: 리듬부터 만들고, 이 리듬과 재밌게 어울릴 대목을 찾았어요. 그 뒤 4명의 소리꾼이 어떻게 나눠 부르고, 같이 부르고, 돌려 부르고, 반복해 부를지 고민했죠. 이제는 수궁가에 남은 대목이 많지 않아서, 그 대목을 어떤 식으로 각색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송희: 사실 이날치 음악은 다른 창작 작업보다 수월한 편이에요. 수궁가에서 그대로 가져온 게 많거든요. 밴드 음악과 판소리가 서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작업했기에 이질감이 없는 것 같아요.

판소리에 선율을 입히는 작업은 많았는데, 역시 판소리는 리듬과 합이 잘 맞는 걸까요.
영규: 세계적으로 제일 흔한 접근법이 전통음악에 화성을 집어넣어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죠. 굳이 그걸 또 할 필요 있을까 싶어서 오히려 판소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그 장점을 요즘 음악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게 리듬감 위주의 밴드를 만들어 소리꾼들과 같이 한 것입니다.

나래: 저도 해금이나 기타처럼 음역대가 비슷한 선율 악기와 작업을 하면서 서로 좀 묻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날치 작업은 소리꾼이 4명이나 있는데도 묻히는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리니, 리듬으로 접근하는 게 맞구나 확신이 들어요.

드럼이 고수 역할을 하는 건가요.
철희: 보컬이 넷이고 베이스도 둘이니, 서로 섞이고 나뉘면서 왔다갔다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심플하게 받쳐주는 비트만 정직하게 연주하고 있어요. 그래야 흐트러지지 않으니까.

나래: 그래도 적재적소에 양념을 넣어주세요. 고수가 추임새 넣는 ‘구멍’이란 게 있거든요. 비어있는 부분에 탁 치고 나오는 추임새를 받아 소리꾼이 이어가는데, 그걸 드럼으로 한 번씩 해주세요. 아주 감각적으로.

철희: 뭔가 필요한 자리라는 게 느껴지거든요. 앨범 작업에서는 사운드적으로 튈 수가 있어서 자제했지만, 라이브 때는 ‘여기는 뭔가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는 부분을 찾아가는 거죠.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사실 이날치 대박 신화는 홀로 쓴 게 아니다. 싸이의 말춤처럼 누구나 도전하고픈 춤을 추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의 찰떡궁합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인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터다.

“다른 무용단과 차별되는 팀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지난해 DMZ 피스트레인 개막식을 연출하면서 역시다 싶었죠. 이날치 활동 초기에 큰 무대가 잡혔는데, 우리끼린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앰비규어스에게 음악을 들려줬더니 너무 좋다며 같이 해보자더군요. 굳이 댄스팀과의 콜라보를 기획한 건 아닌데, 시너지가 잘 난거죠.”(영규) “야외 무대에서 처음 봤을 때 춤이 너무 재밌어서 노래 부르다 말고 ‘우와~’했어요. 나중에 우리와 섞인 영상을 보니 더 좋더군요. 이렇게 좋은 윈윈 관계도 만들어지는구나 싶고, 같이 오래 갔으면 해요.”(이호)

“사실 아주 디테일하고 어려운 안무예요. 마음은 같이 추고 있는데, 제 몸으론 아무리 해도 따라할 수 없더군요.(웃음)”(유진)

방수미 명창 “니들 덕본다” 응원  

국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7인조 밴드 이날치. 전민규 기자

국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7인조 밴드 이날치. 전민규 기자

판소리가 댄스곡으로 거듭난 게 해학 넘치는 수궁가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은데.
나래: 다른 바탕은 사설 자체가 수궁가에 비해 구체적이라 특수한 상황에 갇혀버리기 쉬운데, 그걸 버리고 음악적으로만 들으시면 어떤 바탕이든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송희: 최근에 심청가와 춘향가도 조금씩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캐릭터에만 안 갇히면 되는 것 같아요. 꼭 다섯 바탕이 아니라 작창을 해도 되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내년 초 수궁가의 ‘여보나리’ 대목으로 신곡을 발표한다는 이들은 “‘범 내려온다’만큼 재밌는 곡이 될 것”(영규)이라고 자신했다. “별주부가 육지로 가기 전에 집에 가서 부인에게 다녀온다고 고하면 부인이 만류하는 대목인데, 진짜 재밌어요. 엄청난 반전이 있죠. 수궁가에서 범이 내려온다는 것도 ‘왜 범이 나와?’ 하시잖아요.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에 놀라실 겁니다.(웃음)”(이호)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대중적 주목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큰 2020년이었다. 코로나19 탓에 대형 공연과 투어가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2021년엔 “관객들 땀 냄새와 에너지, 열기를 맘껏 느껴보고 싶다”(송희)는 게 이들의 포부다. “록페(록 페스티벌)가 올해 하나도 안 열렸거든요. 소리꾼들은 록페 경험이 없으니 엄청 해보고 싶어했는데 아쉽죠. 내년엔 해외 투어는 몰라도 록페라도 꼭 하고 싶네요.”(철희)

“공연을 많이 못해도 축복이었어요. 밴드가 좋아서 음악을 했는데, 오래 몸 담았던 장기하 밴드가 해산하면서 더 이상 밴드는 못 할거라 생각했었거든요. 나이대가 맞아야 으쌰으쌰 하니까.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는 이날치 작업으로 좋은 반응까지 얻고 있으니 행복한 마음입니다.”(중엽)

BTS 슈가 ‘대취타’로 포문…국악 대중화 아닌 ‘국악의 K팝화’ 원년

BTS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BTS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올해는 국악계가 그동안 외쳐온 ‘국악 대중화’를 초월해 K팝이 된 국악을 만난 해였다. 포문을 연 것은 BTS다. BTS 멤버 슈가가 5월 발표한 ‘대취타’가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 동시에 오르며 세계를 강타했고, 전통음악 ‘대취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치솟았다. 그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싸이의 독일 월드컵 및 런던 올림픽 응원가 등 대중음악계에서 국악을 모티브로 사용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대취타’는 본격적인 ‘국악의 K팝화’라는 점이 달랐다.

대중음악계가 국악을 K팝화한 ‘대취타’와 달리, 이날치는 국악계가 대중음악으로 넘어온 케이스다. 대중문화라는 외적 환경과 국악계의 내적 동력이 만나 대취타와 이날치로 ‘빵’ 터진 셈이다.

김희선 국민대 교수는 “‘대취타’의 경우 한국 문화의 헤리티지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국민적 자긍심의 변화를 대중문화계가 영민하게 캐치한 것이고, 이날치의 경우는 1960년대부터 현대화 기치를 내걸고 달려온 국악계의 역량이 대중문화와 동시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낸 것”으로 구분했다. 그는 “이날치는 무거운 이미지였던 국악 콘텐트에 ‘펀’과 중독성이라는 대중문화의 특징을 녹여낸 새로운 미학으로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뒤집어놨다”고 평가했다.

사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과감한 실험을 더하는 국악계 크로스오버 트렌드는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 현상이다. 피리·거문고·해금 전공자를 중심으로 드럼·베이스·기타를 활용해 헤비메탈에 가까운 음악을 하는 잠비나이는 아이돌급 해외투어 기록을 세웠다. 장영규와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이 뭉쳤던 민요록 밴드 ‘씽씽’은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국내에서도 관심을 보이던 흐름이 올해에는 대중음악씬의 큰 줄기가 됐다.

국악인의 대중문화계 진출도 활발해졌다. ‘팬텀싱어’에서 판소리 특유의 천변만화 창법으로 주목 받은 소리꾼 고영열을 비롯해 판소리와 트롯을 오가는 ‘미스트롯’의 송가인, 가야금을 타며 트롯을 부르는 ‘트롯신이 떴다’의 유라 등 국악 전공자들이 대중스타로 뜨고 있다.

주목할 점은 대중문화와 국악의 만남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김희선 교수는 “요즘 예능 PD들이 국악 방송을 열심히 본다고 한다. 대중문화와 국악의 접점이 만들어지면서, 대중문화 쪽에서 국악의 다른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국악 현대화’가 60년간 넘지 못한 고개가 대중문화와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다”면서 “해외 진출 전망도 밝다. 아시아 음악으로 친숙한 중국·일본 음악에 비해 한국 음악은 소리 이미지 자체가 없었던 만큼,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세인 지금 한국적인 음악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련된 문화 코드로 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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