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중계비 90% 저렴, 조기축구까지 실시간 방송

중앙선데이

입력 2020.12.26 00:02

업데이트 2020.12.2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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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호 24면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 중계 바꾸는 AI

AI 카메라로 국내 대회를 중계하는 와이에스티㈜의 윤종훈 상무가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축구 테마파크 풋볼 팬타지움의 가상 스튜디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인섭 기자

AI 카메라로 국내 대회를 중계하는 와이에스티㈜의 윤종훈 상무가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축구 테마파크 풋볼 팬타지움의 가상 스튜디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얼마 전 방송 스포츠뉴스에서 기상천외한 해외토픽이 방영됐다. 인공지능(AI) 기능을 장착한 카메라가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경기를 찍던 중 부심의 대머리를 공으로 오인했다. 카메라는 한동안 터치라인을 따라 왔다갔다 하는 그 부심의 움직임만 집중적으로 비춰줬다.

이스라엘산 ‘픽셀롯’ 중계 시스템
렌즈 4대 촬영한 영상 AI가 분석

스포츠 뉴스처럼 생생하게 방영
공·선수 움직임 포착, 학습까지

국내도 축구·배구 등 유튜브 중계
데이터 축적 통해 꿈나무 육성도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저런 엉터리가 있나. AI는 아직 믿을 게 못 돼”가 아니었다. “AI가 프로축구까지 중계하네”라며 인공지능이 바꾸고 있는 스포츠 세상을 실감하는 분위기였다.

렌즈 네 개가 달린 픽셀롯 카메라. [사진 와이에스티㈜]

렌즈 네 개가 달린 픽셀롯 카메라. [사진 와이에스티㈜]

이 카메라는 세계 최고의 영상 분석 기술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픽셀롯(Pixellot)’이라는 제품이다. 8000대 이상의 픽셀롯 카메라와 중계 시스템이 전 세계 경기장에 설치돼 있다. 픽셀롯의 AI 스포츠 중계 카메라 시스템은 렌즈 4개가 달려 있는 카메라와 촬영 영상을 처리하는 VPU(Video Processing Unit)로 구성된다. 촬영한 영상은 픽셀롯 클라우드 서비스에 연결된다. 경기 촬영과 동시에 실시간 방송 또는 인터넷 중계가 가능하다.

이 시스템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카메라를 경기장에 설치하는 것,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기존 중계 비용의 90%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유튜브 중계 보고 학부모들 열광

그렇다면 AI가 하는 일은 뭘까. AI는 렌즈 4대가 촬영한 걸 합성한 16대 9 대화면 속에서 어떤 장면을 보여줄 지 결정한다. AI는 방송 분야 전문가의 카메라 워킹을 학습해 패턴을 축적한다. 축구의 경우 골키퍼가 길게 골킥을 했을 때 공만 따라가는 게 아니다. 줌아웃을 해 공이 떨어질 곳 주위에 포진한 양 팀 선수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이 떨어지는 곳에서 헤딩 경합을 하는 선수들을 줌인으로 비춰준다. 그 다음은 볼을 잡은 선수 중심으로 카메라 워킹을 진행한다.

농구의 경우 외곽에서 패스가 돌아갈 때는 큰 화면으로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잡는다. 그러다 골밑을 향해 드라이브인을 하면 그 선수를 줌인해 보여주는 식이다. 국내에서도 AI가 촬영한 축구·농구·배구 중계 화면을 봤는데 마치 스포츠뉴스나 실제 중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미국에서는 전미고교스포츠협회(NHFS) 산하 1만9500개 학교를 대상으로 중계 서비스를 하고 있다. 월 10.99 달러 구독료를 내면 전 경기를 실시간 볼 수 있다. 멕시코축구협회는 국가대표부터 아마추어까지 모든 경기를 픽셀롯 시스템으로 중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도 스타트업인 와이에스티㈜가 픽셀롯과 독점 계약을 맺고 축구·배구·농구·핸드볼 등 아마추어 경기를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고 있다. 이 분야 실무책임자인 윤종훈 상무는 “코로나19로 인해 경기장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의 경기를 보려는 학부모·친지들이 이 서비스에 열광하고 있다. 최소 비용으로 학교 스포츠팀은 물론 동호회 선수들의 뛰는 모습까지 생생하고 실감나게 볼 수 있어 국내 스포츠 중계 지형에 지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픽셀롯 카메라가 배구 경기를 찍는 모습. [사진 와이에스티㈜]

픽셀롯 카메라가 배구 경기를 찍는 모습. [사진 와이에스티㈜]

윤 상무는 AI가 일으킬 스포츠 환경의 변화를 ‘스포츠의 민주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올해 6개 종목 총 352경기를 유튜브를 통해 중계했다. 대한핸드볼협회와는 SK핸드볼코리아리그(JTBC와 계약)를 제외한 아마추어와 생활체육 대회를 모두 중계하기로 했다. 중고배구연맹과는 1년에 6개 대회를 중계하는 3년+3년 계약을 맺었다.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와 중고농구연맹은 선거 후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윤 상무는 “현재 렌즈 4개가 내장된 픽셀롯 카메라 한 대를 경기장에 설치하고 운용하는 데 3만 달러(약 3278만원) 정도가 든다. 전국의 축구장 120개, 체육관 200개에 카메라가 설치된다면 학생 스포츠 경기의 90%를 소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학생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가 예선부터 모두 중계되고 심지어 동네 조기축구 경기까지 중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극소수 엘리트나 프로 선수들만 각광받던 스포츠 미디어 환경이 확 달라진다. 지역 스타, 동네 스타들이 뜰 것이다.

AI가 촬영한 영상을 받아 다양한 중계 콘텐트가 유튜브에 올라오게 된다. 예를 들어 서울 동북고와 영등포공고가 경기를 한다면 중계는 학교 방송반 아나운서와 해설가가 편파 중계를 할 것이다. 이들은 친구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히스토리를 아니까 더 재미있고 실감나는 중계를 할 수 있고, 학교 스타를 넘어 파워 유튜버로 성장할 수 있다.

AI 중계는 학부모의 부담도 줄여준다. 대입을 위해 선수가 경기를 뛰는 영상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는데 촬영업체에 의뢰하면 찍을 때마다 돈이 든다. AI 중계는 영상의 표준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뤄준다. 학부모는 큰 부담 없이 자녀의 플레이 영상을 축적하고, 약간의 수수료만  내면 AI가 편집한 개인 포트폴리오를 받을 수 있다.

영상 분석 ‘제2 손흥민’ 발굴 가능

현재 AI 중계에는 기본적인 화면과 스코어 등만 제공된다. 앞으로는 다양한 그래픽과 느린 화면, 다시보기, 아나운서 멘트와 해설 등이 가미될 것이다. ‘캐스터 배성재-해설 신문선’ 같이 마음에 드는 중계진을 고를 수도 있고, 학교 축구장 경기를 찍은 뒤 배경을 입혀 바르셀로나 누캄프에서 뛴 것처럼 바꿀 수도 있다. 콘텐트의 무궁무진한 확장이 가능하고, 이는 스포츠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건 영상 데이터의 축적이다. 기존의 플레이 분석 시스템과 협업한다면 ‘A라는 플레이를 잘 하는 초등학생 B선수가 10년 뒤 국가대표가 됐다’는 기록과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제2의 손흥민·이강인’을 발굴해서 키워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에서 국내 최초 축구 테마파크 ‘풋볼 팬타지움’을 운영하는 정의석 대표는 “스포츠는 IT와 만나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했다. 여기에 AI 기술이 접목된다면 무궁무진한 콘텐트를 만들어내고, 스포츠의 개념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햇빛에 반짝 부심 대머리, 공으로 착각해 중계 실수
AI 카메라가 ‘부심 머리와 공을 착각한 사건’

AI 카메라가 ‘부심 머리와 공을 착각한 사건’

AI 카메라가 ‘부심 머리와 공을 착각한 사건(사진)’은 지난 11월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챔피언십리그(2부리그)가 벌어진 칼레도니안 스타디움에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픽셀롯 카메라를 설치해 중계를 시작한 지 이틀 만이었다. AI 카메라는 시야에서 공이 사라지자 당황한 나머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심의 대머리를 공이라고 인식했다.

와이에스티㈜ 윤종훈 상무는 “아직 AI 중계가 완벽하지는 않다. 다행인 점은 AI의 오류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밝혀낼 수 있다는 거다. 사람이 실수를 한 것은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AI는 선수 또는 심판의 대머리가 낮 경기에서 햇빛을 받으면 공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학습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류를 일으킨 소프트웨어는 이틀 만에 수정됐다. AI는 이번에 새로운 케이스를 학습하게 됐고, 덤으로 픽셀롯을 홍보비 한 푼 없이 전세계에 엄청나게 홍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는 하이라이트를 만들 수도 있다. 축구의 경우 골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데, 골 그물 안에 공이 들어가 있거나 같은 팀 선수들이 모여서 뒤엉켜 있으면 골이 터진 것으로 인식하고 그 장면 앞뒤로 15초 정도를 잘라서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16개 종목의 중계를 AI가 큰 문제 없이 해낼 수 있다. 축구·배구·농구 등 사각 경기장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공이 오가는 경기에선 크게 오작동 할 게 없다. 지금보다 카메라의 해상도를 높이고, 줌인을 더 크게 하는 정도로 발전할 수 있다. 카메라 수를 늘려 다양한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면 AI는 스포츠 중계 PD가 하는 일을 거의 완벽하게 대체할 것이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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