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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관료들은 ‘스가린’이라 부른다…지지율 추락 스가의 굴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최근 달갑지 않은 새 별명을 얻었다. 원래 이름인 스가에 스탈린을 섞은 ‘스가린’(スガーリン)이 그것이다. 취임 후 독선적 행보가 스탈린을 연상케 한다는 뜻으로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는 스가 총리의 요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형 정치인으로 친근한 '아저씨 이미지'가 부각됐던 취임 초와 대조되면서다.

스가 총리의 포스터와 스탈린의 사진을 비교한 트위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스가 총리의 포스터와 스탈린의 사진을 비교한 트위터 게시물. [트위터 캡처]

마이니치신문은 24일 “스가 총리가 관료들 사이에서 스가린으로 불리고 있다”고 전하며 집권 자민당 한 중진 의원의 한숨 섞인 반응을 소개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관료들을 가차 없이 잘라내 이런 별명이 급속히 퍼졌다는 것이다.

"독선적 인사 스타일…독재자 연상시켜"

스가 총리의 독선적 스타일은 이미 관방장관 시절부터 싹이 보였다고 마이니치신문은 분석했다. ‘고향세(稅)’ 논란이 대표적이다. 스가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기부금을 내면 세액을 공제해주는 이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는 세금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고소득층의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마이니치신문은 “스가 당시 장관이 이런 점을 들어 고향세에 반대한 총무성 관료를 요직에서 앞장서 배제했던 ‘실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아베 내각 시절 정권의 결정에 반대한 인사들에게는 “자리를 옮겨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한다. 총리에 취임하고 나서는 지난 10월 정부 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밝혀온 학자 6명을 일본학술회의 회원으로 임명하는 데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독선적 이미지가 굳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스가 총리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 주변과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결단하는 타입”이라고 분석했다.

자민당 붉은색 포스터도 한몫

지난 2월 23일 ‘조국 수호자의 날'(Defenders of the Fatherland Day)을 맞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지자들이 스탈린 초상이 담긴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23일 ‘조국 수호자의 날'(Defenders of the Fatherland Day)을 맞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지자들이 스탈린 초상이 담긴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가린이라는 별명은 관료 사회에서는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SNS상에선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엔 붉은색 바탕을 배경으로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문구와 함께 스가 총리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자민당 포스터가 한몫했다. 붉은색 소련 국기 앞에 선 스탈린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에서다. 포스터 이미지에 스가 총리의 독선적 인사 스타일이 더해졌다는 의미다.

실제 트위터상에선 스가린 관련 게시글(#スガーリン)이 잇따르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이견을 주장하는 자는 철저하게 탄압·방해·배제한다’거나 ‘주변 시중드는 관료들이 예스맨 투성이’라는 등 부정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친근한 ‘아저씨’였던 스가…지지율 하락에 부정적 면모 부각

스가 총리가 처음부터 독재자 이미지를 구축했던 건 아니다. 그는 한때 비교적 친근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팬케이크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관방장관에 있을 때 새 연호(레이와)를 공개해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스가를 거꾸로 한 ‘가스’는 그가 직접 입에 올리는 애칭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로운 연호 '레이와'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로운 연호 '레이와'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스가 총리의 별명 중 스가린이 최근 급부상한 건 하락하는 지지율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학술회의 임명 거부 사태 외에도 여행 장려 정책인 '고투(Go To) 트래블'의 뒤늦은 중단을 놓고서도 논란이 일었지만 스가 총리는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취임 초 60%에 육박하던 내각 지지율은 지난 19~20일 조사에선 40% 밑으로 떨어졌다. 자민당 중진 의원은 마이니치신문에 “관료들이 총리를 정말 무서워한다면 스가린 같은 별명을 얘기할 수 없다”며 “이런 별명이 퍼지는 것 자체가 총리의 힘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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