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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지방자치법에서 주민자치회 조항은 왜 빠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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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주요 쟁점 법안 처리 문제로 시끄러운 와중에 별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지방자치법이 지난 정기국회에서 개정되었다. 1988년 이후 32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전부 개정되었고, 자치분권의 새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주민주권과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며, 중앙과 지방의 협력을 규정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주민자치는 시대정신이자 #지방자치 성공의 필요조건 #자치분권의 새 시대에 맞게 #주민자치회 조항 복원해야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 있던 ‘주민자치회’ 조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와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통째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2013년 행정안전부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되어 2020년 6월 현재, 전국 118개 시군구 626개 읍면동에서 시범 시행 중이다. 올해로 7년째를 맞아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확대되어 온 주민자치회가 아직도 시범사업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계개편 특별법’에서 주민자치회를 ‘참고를 목적으로’ ‘행안부 장관’이 ‘시범적으로만’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운영과 가능 수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한다’라는 내용을 지방자치법에 명시하여 현 주민자치 시행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자치회 운영과 지원의 법적 근거를 확고히 하기 위한 시도였다.

현재 관련 시민사회 부문을 중심으로 ‘온전한 주민자치를 위한 지방자치법 촉구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주민자치회 근거조항을 삭제한 행안위와 법안소위를 규탄하며, 주민자치 없는 지방자치법을 반대하고, 주민자치회 조항 복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입장도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황명선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은 “지방자치법에서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것은 직접민주주의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향후 주민자치회를 도입할 수 있는 입법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안위 소속 김영배 의원이 ‘주민자치회 활성화를 위한 기본법’ 발의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관련 기사와 칼럼도 대부분 주민자치회 조항 삭제에 대해 부정적이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논조다. 주민자치 없이 무슨 지방자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자치회 조항은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빠지게 된 걸까? 필자 또한 이해하기 힘들어 회의 속기록을 들여다봤다. 9월 16일 열린 법안소위 1차 회의로부터 11월 11일 공청회, 11월 30일·12월 1일·2일에 열린 법안소위, 그리고 최종 12월 3일 행안위 회의에 이르기까지 주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반대 내지는 유보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주민자치회는 기존 주민자치위원회 제도와 뭐가 다른지, 왜 주민자치회가 꼭 필요하며 어떤 점에서 더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의 전환 문제와 한 지역에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가 병존하게 됨으로써 혼란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주민자치회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다.

이에 대해 법안소위의 토론, 행정안전부 차관의 답변, 공청회 진술인들의 전문 의견 등이 이어지면서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질적으로 다르고 더더욱 자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주민자치회 운영상의 문제들은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문제도 개정안과 선거법에 주민자치회의 정치적 중립의무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는 의견이 오갔다.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은 문제 조항에 대한 의견을 반영하여 보완·정리한 수정 내용을 적절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근데 주민자치회 조항은 왜 빠지게 되었을까?

회의록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12월 2일 법안소위에서 한병도 위원장의 “주민자치회 관련은요, 야당 간사이신 이명수 위원님하고 좀 논의를 해서 오늘은 심사하지 않고요. 다음 회의 때, 연기해서 중요하게 논의를 하겠다는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래서 주민자치회 관련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이 나온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12월 3일 행안위 최종 법안 의결 회의에서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개정안이 일언반구의 설명 없이 통과된다. 단지 회의록에는 김영배 의원의 ‘주민자치가 기관자치에 앞서며, 주민자치회가 통째로 빠진 게 매우 아쉽고, 이 법이 통과되고 나면 바로 다음번 상임위에서 주민자치회 부분을 꼭 중점적으로 다뤘으면 좋겠다’라는 제안이 기록되어 있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주민자치회 조항이 빠진 건 유감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일단 통과시키기 위한 여야 간 타협의 소산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는 시대정신이자 지방자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지난 7년간 우리의 주민자치회 경험도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민사회와 지방자치단체, 학계와 언론의 논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정치권은 지체 없이 주민자치회 조항을 복원하기 바란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