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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가면 항문검사 수모…백신 늦어 코로나 내년 겨울 갈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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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3일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3일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39명이 숨진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수습된 이후 사후 시스템 개선 대책을 주도했던 정기석(62)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천직인 의사 자리로 돌아갔다. 본부장으로 재직할 때 역학조사관 34명을 처음 확보해 실전 훈련을 시켰고 패스트 트랙을 도입해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신속한 진단검사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정 교수를 23일 만났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청와대·총리실·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에서 메르스 당시의 경험을 듣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적 있나.
 "전화든 간담회 요청이든 단 한 번도 없었다. 철저히 전 정부 사람으로 여기니까 그런듯하다. 바이러스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니는 것이고 정치랑 상관이 없는 건데 (거리를 두는 게) 안타깝다."
 -'메르스 백서'를 냈는데 문재인 정부가 교훈을 제대로 못 살린 것이 있다면.
 "2016년도에 감염병 전담병원 사업을 시작했는데 2017년 5월 정부가 바뀌면서 신경을 제대로 안 썼다. 계획대로 전국에 5~7개 감염병 전담병원을 세웠으면 지금 병상이 부족해 병상 동원령 이야기가 안 나왔을 거다. 당시엔 질본이 복지부 산하였으니 복지부 장관이 제대로 챙겼어야 했다."
 -대구 때처럼 지금 수도권에 중환자 병상이 없어 대기하다 숨지는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 겪는 모든 사례를 대구에서 경험했는데 대구 경험에서 못 배웠다. 그러니까 사태가 터지면 계속 뒤만 따라간다. 정말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전문가 말을 들었으면 병상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는데 정부가 제대로 준비를 안 했다. 11월 초에 거리두기를 다섯 단계로 세분할 때도 병상 등 의료 대응 지침은 빠졌다. 국공립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 역할을 해야 한다.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중앙보훈병원, 시립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에 있던 환자들을 지난 여름부터 민간 병원으로 뺐으면 중환자 병상 수천개가 확보됐을 거다. 적어도 병원에 못 가서 죽어선 안 된다."
 -지난 1년의 코로나 대응을 총평한다면.
 "초반에는 훈련된 대로 진단검사를 신속하게 잘했다.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은 8월에 2차 대유행을 겪고도 겨울 대유행을 대비해 병상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환자들이 입원도 못 하고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9~10월 이후 역학조사 능력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그냥 내버려 뒀다. 확진자 중에 감염경로 추적이 안 되는 비율이 계속 쌓여 지금은 30%다. 감염 경로 추적은 이미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정세균 총리. 정 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정세균 총리. 정 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서는 진 것인가.
 "그렇다. 1차 방역 전투에서는 잘했다. 2차 전투도 그런대로 수습했지만 2차 전투 때 얻은 교훈을 잘 못 살리는 바람에 지금 3차 전투를 아주 힘겹게 치르고 있다. 코로나를 없앨 수 있는 것은 거리두기로 국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백신과 치료제다. 그 부분을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전세가 불리해졌다. 다른 나라는 집단면역이 생겼을 때 우리만 입국 금지당하게 생겼다. 경쟁에서 역전돼 우리나라만 고립될 판이다. 중국 출장 가는 사람은 항문 검사까지 당하는 수모를 이미 겪고 있다."
 -이 지경까지 초래한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2차 대유행이 터지기 전인 7월에 정부가 경제와 방역을 모두 잡겠다고 선언하면서 8대 소비 쿠폰을 발행한 시점이다. 그러면서 여름 휴가로 이어지며 완전히 노는 분위기로 갔다. 그게 가장 큰 실책이다. 방역을 빨리 끝내고 경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낫지 경제를 찔끔찔끔 돌아가게 하면서 방역도 자꾸 놓치는 게 문제다. 가능하면 짧고 굵게 갔다가 풀어주는 게 낫다. 방역 지휘봉을 정은경 질병청장에게 줬으면 그렇게는 안 했을 것이다."
 -정세균 총리는 "7월에 확진자가 적어서 백신 생각을 못 했다"고 토로했다.
 "7월이면 백신 구매하기 딱 좋은 때였다. 백신 제조사들이 백신 사라고 제안하고 다닐 때였다. 우리에게 사라고 왔을 때 지금 어느 나라가 사는지 대사관과 국가정보원을 통해 해외 동향이라도 파악했어야 했다. 그런 판단과 조사를 안 하면서 막연하게 K-방역을 기대하고 잘 되겠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이 큰 문제였다."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백신보다 치료제를 더 강조했다.
 "과학자들에게 물어봤으면 절대 그런 답 안 나온다. 잘못된 판단이다. 병에 안 걸리게 하는 게 중요하지 병에 걸리고 치료하겠다는 게 중요한가. 이런 바이러스는 완벽한 치료제가 없다."
 -대통령 주변에 이진석 국정상황실장도 있는데.
 "이진석 같은 분들은 한 번도 죽어가는 환자 옆에서 밤을 새워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달아 본 적도 없고 폐렴을 치료해본 적도 없는 탁상공론자들이다. 의과대학을 나왔지만, 의사라기보다는 사회의학자들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백신을 12회나 언급했다고 해명했는데.
 "시기가 많이 늦었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서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대통령은 '백신 주권'을 강조했다. 메르스로 12조원의 경제 손실을 봤는데 코로나 피해는 100조원 이상 일거다. 싱가포르가 8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우리는 적어도 백신 구매에 몇조원을 던질 필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1일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정 청장은 문 대통령의 격려 발언을 들은 뒤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1일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발언하고 있다. 정 청장은 문 대통령의 격려 발언을 들은 뒤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충북 오송에 찾아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당시 실내에 직원이 운집해 50명 이하로 제한한 방역 지침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방송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충북 오송에 찾아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당시 실내에 직원이 운집해 50명 이하로 제한한 방역 지침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방송 화면 캡처]

 -백신 실패 책임이 대통령에 쏠리자 백신 확보 책임자는 질병청장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백신 사라고 지시 한 번 하면 그냥 가는 거다. 백신 도입 협상을 그동안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소관으로 해왔다. 구매가 늦었다는 비판을 받으니까 12월 초부터 질병청으로 슬쩍 넘겼다. 11월 말에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백신 확보하라고 하자 책임을 반분해야 하니까 슬그머니 넘긴 것 같다. 사실 9월에 질본이 질병청으로 승격되면서 질병청에 백신 수급과를 만들어줬으니 그때부터 권한을 넘겼어야 했다. 복지부 관료들이 자기들끼리 잡고 실컷 하다가 여론이 나쁘니까 '앗 뜨거워' 하면서 질병청에 넘긴 것 같다."
 -9월에 질본을 외청으로 승격하는 와중에 백신 정책의 연속성이 헝클어졌다는 말인가.
 "정확한 지적이다. 그때 다 넘겼어야 했다. 전략적 판단을 잘 못 해 7월에 이미 게임은 끝나 있었다. 그런데도 9월부터 약 3개월 백신 확보의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정은경 청장은 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나.
 "소비 쿠폰 발행할 때 제 목소리를 크게 냈어야 했다. 법무부가 구치소에 수감하면서 2주 격리 이후 검사를 안 했을 때 야단을 쳐야 했다. 정 청장은 자기 일은 착실히 하는데 남에게 강한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국장에서 차관급으로 바로 올라가면서 관료사회 내부에서 선배들의 압력도 어마어마할 거다. 그래도 국민만 보고 해야 한다."
 -대통령은 "늦지 않게 백신 준비 잘한다"고 했는데.
 "최소한 2~3월까지는 백신 없이 무방비로 겨울을 보내야 한다. 3차 대유행의 불이 꺼지지 않고 1월 말까지는 계속 갈 것이다. 서울에 신규 확진자가 1만 5000명이 더 발생할 거다. 3단계로 올려 거리두기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나중에 봉쇄 조치까지 하면 외출을 금지할 거다. 집과 직장 사이만 왔다 갔다 해야 할 수도 있다. 백신이 없으면 봉쇄로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11월 말 G20 회의에서 뒤늦게 백신의 공정 배분을 주장했다.
 "우리 집에 불났는데 옆집 불 끄는 것과 같다. 우리 집 불부터 꺼야 한다. 백신 개발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우리보다 앞서서 맞기 시작한 나라는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준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 리더가 투명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면 국민은 끝까지 따라갈 것이다."
 -백신은 신속한 확보와 안전성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확보는 최대한 신속하게 하고 안전성을 충분히 확인한 뒤 국민에게 접종해야 한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나중에 버리더라도 조금 과하게 충분히 확보하는 게 낫다. 거기서 생기는 재정 손실은 어쩔 수 없다."
 -급기야 중국 백신을 수입할 거란 루머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백신은 임상 시험 자료를 발표하지 않으니 믿기 어렵다. 뭔가 숨기고 싶거나 자신 없는 게 있어서 안 내는 것 같다. 검증되지 않은 백신은 아무리 급해도 수입하면 절대 안 된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3일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3일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내년 10월 전에 국민의 60% 이상이 접종해야 할 텐데.
 "10월도 늦다. 적어도 내년 8월 말까지는 최소한 국민의 60%는 맞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확보한 백신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작다. 백신을 늦게 확보하는 바람에 집단면역 형성에 차질이 생기면 2021년 겨울도 우리 국민은 코로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서글픈 얘기다."
 ◇정기석=서울의대 졸업. 의학 박사. 한림대 성심병원 원장을 거쳐 2016년 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한림대 의료원장을 지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소현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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