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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배동 모자의 비극 부른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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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60대 김모씨가 얼마 전 숨진 채 발견됐다. 발달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아들 최모씨는 어머니의 사망 이후 거리에서 노숙했다. 도와달라는 최씨의 구조신호를 사회복지사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코로나19로 집 문을 걸어 잠그고 타인과의 대화조차 기피하는 이때 김씨의 죽음이 언제 발견됐을지 알 수 없다.

애매하게 가난하면 복지 못 누려 #반복되는 빈곤층의 죽음 막아야

방배동 김씨의 죽음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비슷한 유형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와 지난해 관악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모자에 이르기까지 가난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사망한 채 발견된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매년 동짓날 열리는 ‘홈리스 추모제’는 무연고로 사망하거나 거리와 쪽방 등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린다. 서울 지역에서 우리가 헤아릴 수 있었던 사망자 이름은 올 한해만 295명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외로운 죽음은 계보가 됐다.

방배동 김씨의 삶은 지난해 11월에 사망한 인천 일가족과 닮았다. 그들은 김씨 모자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월세를 보조하는 주거급여를 받았지만, 부양 의무자 기준 때문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신청하지 않았다. 이혼한 전 배우자에게 연락이 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거급여는 받지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않는 사람은 5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2005년에 뇌출혈 수술을 받은 김씨의 사인은 ‘지병으로 인한 변사’다. 2008년부터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그는 지난 12년간 적절히 치료받거나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의 한 노숙인은 응급실에 이송된 뒤 건강보험료가 체납돼 진단 비용이 30만원 이상 청구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포기했다. 그날 밤 그는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는 80만 명이다.

가난해도 누구에게나 생계와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법이 이미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숫자는 7%의 절대 빈곤율에 미치지 못하는 3% 내외를 유지해 왔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자도 3% 정도다. 부양 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비수급 빈곤층은 73만 명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사각지대는 20년간 해결되지 않았다.

추모하는 마음에는 변화의 씨앗이 있다고 믿는다. 추모조차 잊은 사회는 더 나아질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모가 20년째 그저 반복될 뿐이라면 여기에는 기만이 있지 않은가. 빈곤층의 반복되는 죽음에 한국 빈곤문제 발생의 맥락과 불평등의 속내가 알알이 박혀있다면, 죽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다른 제도에 비해 빈곤층 복지의 변화는 너무 더디다. 이런저런 복지 제도가 있다는 홍보는 넘치지만, 가족이 있거나 애매하게 가난해서는 접근할 수 없는 제도가 대부분이다. 복지 사각지대는 바로 그런 진창이다. 막연히 슬퍼할 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혼 후 빈곤을 겪어온 한부모 가정, 판정받지 못한 장애를 가진 가족, 건강보험료 장기 체납자, 부양 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 월세 25만원을 내고 살았지만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 김씨 모자에게 따라붙은 이런 위기의 목록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묻고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강화된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집에 머물라고 요구하지만 각자의 집살이가 괜찮은지 묻지는 않는다. 문 닫힌 집 안에서 가난과 싸우다 죽어가는 것도 코로나만큼 두려운 일이다. 빈곤층 복지를 확충하기 위한 대담한 계획이 절실하다. 부양의무자 기준부터 폐지하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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